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온 세상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뒤덮여,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해마다 화사한 꽃구경으로 맞이하던 봄이건만, 금년에는 꽃구경 한 번 마음 놓고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 어릴 적에 동네 골목 자치기도 제대로 못하던 실력이니 남들 잘 나가는 그린을 향하는 건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TV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갑갑하기만 해서, 눈은 자연스레 해외여행 프로그램이나 야외 레저 프로그램을 향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유독 낚시 프로그램에 눈길이 갔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곳도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이다 보니, 낚시는커녕 수영도 변변히 배울 기회가 없었던 필자로서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지만, 요즘 동호인이 700만을 넘었다는 시대적 대세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낚시 프로그램의 캐치 프레이즈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어부”. 아마 그 출연진이 가자는 데로 하자는 대로, 따라 가고 따라 하면 물고기를 많이, 잘 잡을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은데, 필자의 직업병, 엉뚱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거기 출연하는 연예인이 과거 대형 선박침몰사고에 희생될 뻔했었다던 옛 기억. 더구나 시기적으로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 하지만, 그런 사고가 우리 근대 역사에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사망자가 300여 명에 이르는 것만도 세월호 사고 이전에 무려 두 차례나 있었다.

첫 번째는 1953년 1월 9일 전남 여수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던 정기 여객선 창경호가 부산 다대포 앞바다 거북섬 부근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한 사고이다. 전시 중이라 승선인원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대략 300여 명 이상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창경호의 선장 등 생존자들은 높은 파도에 의해 침몰하였다고 진술하였지만, 검찰당국은 배 밑바닥에 쌀 260가마, 상갑판에 200가마를 실어 하용중량 2백 톤을 초과한 승객과 화물을 싣고 있었다는 점을 중시하여, 균형이 맞지 않은 초과 적재를 주요 원인으로 추정하였다. 게다가 구명보트 한 척 및 구명복 70벌을 모두 본사 창고에 두고 다닌 것도 국회 특별조사단의 조사로 드러났었다.
두 번째는, 1993년 10월 10일 오전 서해 위도를 떠나 부안 격포항을 향하다 돌풍을 만나 회항하던 도중 파도를 맞아 침몰한 서해훼리호 사건이다. 이 사고로 292명이 사망하였다. 당일 날씨는 악천후였지만 규정상으로는 출항이 가능한 여건이었다고 하는데, 승무원들은 출항을 꺼렸으나 오히려 일부 승객들이 출항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또한, 정원을 초과해서 승객을 태웠던 반면, 승무원은 규정된 인원보다 부족했었던 점 등 선박의 운용에도 문제점이 지적되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사건의 경우에도 사고 직전 배가 흔들린 후에 승객들에 안전하게 선실에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있었기에 피해가 커졌다는 일부 생존자들의 주장도 있었다고 하고, 배가 급회전한 것은 조종 미숙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배 역시 구명정은 9개 구비되어 있었으나,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은 2개뿐이었다고 한다. 사건 후 해양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반과 검찰에서는 초과 승선과 과적, 운항 부주의, 방수구 부족 등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발표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세월호는 이미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과거 사고를 한 번만이라도 되짚어 보았더라면,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만 더 노력했었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는 아닐까. 아니, 사고 이후에라도 우리는 무슨 노력을 했던가.

예전에 외국에서 아침 TV 뉴스를 보다가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다. 공사차량 뒤를 가깝게 따라가던 승용차 운전자가 공사차량에서 떨어진 쇠파이프에 가슴을 맞고 사망한 사고를 보도하면서, 왜 그런 사고가 났는지, 어떻게 해야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는지, 운전자의 입장에서 소상히 사고예방 운전요령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5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뭐가 개선되어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려 주는 특집방송도 없고, 특집 신문기사도 없다. 해당 분야 담당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 무관심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월호의 아픔이 미처 가시지 않은 채, 벌써 5년이 흘렀다. 이번 선거에 가슴 한 쪽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후보도 있었다. 뭘 바꾸자는 건지, 본인은 뭘 바꾸려고 노력했는지, 그동안 우리는 뭘 바꾸었는지. 아니, 바꾸려고 노력은 해 왔는지. 봄꽃이 문제가 아니라, 깊이깊이 반성해야 하는 계제이다. 한 사회의 버릇이나 가치관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사고는 피해를 본 당사자뿐만 아니라, 남겨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와 회한을 남긴다. 금년 봄에도 팽목항을 찾아 피눈물을 삼키는 부모님들의 심정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우리의 노력이 너무도 부족한 거 아닌가. 예능 프로그램의 캐치 프레이즈처럼,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는 과연 어디에서, 언제나 다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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