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5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올해에만 15명의 택배기사가 사망했다. 대책위는 택배기사들이 장시간, 고강도근무에 시달리다 과로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도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은 어느 정도로 위험할까.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들이 있을까.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6일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쿠팡 칠곡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관련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 뉴시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6일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쿠팡 칠곡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관련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 뉴시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은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연이은 택배노동자들의 사망과 관련해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표하는 한편, 국가와 기업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지난달 29일 “생명과 안전은 인권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가치이며,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은 국제인권조약과 국제적 노동기준 등이 보장하는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 경향은 택배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택배 업무량이 증가했고, 택배노동자들은 연속적인 장시간 노동을 요구받고 있다”라며 “택배노동자들의 사망 역시 이러한 과중한 노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첫 총회에서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을 제1호 협약으로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시민단체인 ‘일과 건강’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택배노동자들은 주 6일 근무에 주당 평균 71.3시간,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택배노동자의 근로자성에서 찾고 있다.
인권위는 “현행 법·제도상 택배노동자는 대표적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자영업자, 개인사업자’로 간주되어 노동법의 ‘근로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은 국가에게 인권보호의무가 있고, 기업은 기업활동에 있어서 인권존중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라며 “국가와 기업은 노동자의 건강권 및 생명권 위협의 문제가 지속되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주요 택배사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하여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더욱 실질적인 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 제정 논의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조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주 55시간 이상 일하면
뇌졸중 발생 위험 1.33배 높아져

◇과로가 뇌심혈관질환 유발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을 비정상적인 근무 일정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생체시계 손상과 수면 방해 및 감소를 유발해 피로감, 기분, 활동도 등에 급성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국내외 연구에서도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로 인해 뇌심혈관질환, 정신질환, 수면장애, 대사질환, 암, 근골격계질환 등이 나타난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나 교대근무가 뇌심혈관질환 발생과 유의한 관련성을 갖는다는 증거는 비교적 많은 연구들을 통해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25편의 코호트 연구를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과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발생 간의 관련성에 대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 평균 35~40시간 근로와 비교해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을 1.13배 높이고, 뇌졸중 발생 위험은 1.33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뇌졸중 발생 위험은 근로시간 증가에 비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교대근무와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 간의 관련성에 대해 기존 연구 21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주간 표준근무와 비교해 교대근무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률을 26%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연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과로는 뇌심혈관질환 및 정신질환 발생 등과 유의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한 우리사회의 부담 역시 낮지 않음을 고려할 때, 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과로를 막기 위한 국가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의학적 관리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근로시간 길어지면 콩팥 건강에 빨간불

근로시간이 길어지면 신장 기능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동욱 연구강사 연구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2007~2017년)를 활용해 임금노동자 2만851명의 주 평균 근로시간과 신사구체여과율(eGFR)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다.

지난 3일 연구팀에 따르면 주 52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는 임금노동자가 주 평균 1시간 추가 근로를 할 경우 신사구체여과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시간 노동이 신장기능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장 속으로 들어온 혈액은 사구체에서 물, 전해질, 각종 노폐물 등이 여과되는데 사구체여과율은 신장 기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신장질환은 초기에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신장 기능이 서서히 나빠져 기능부전 상태에 이르면 정상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는 만성신장질환을 겪게 된다.

강모열 교수는 “장시간 노동이 만성신장질환의 발생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연구는 현재까지 전무했다”며 “최근 업무상 과로 등으로 인해 만성신장질환의 발생 및 악화를 주장하는 산업재해 보상 신청이 증가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적절한 보상과 예방적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번 연구결과가 장시간 노동이 만성신장질환의 잠재적 위험인자임을 인지케 하고, 노동자의 질병 예방 및 보상을 위한 근거 마련에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용 안전망 구축 위해
전국민 소득정보 파악체계 마련

◇국민 절반, 택배노동 개선 위해 “택배료 인상 감수할 것”

국민 절반 이상은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택배요금 인상도 감수하겠다는 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택배노동의 주 5일제 제도화를 위해선 택배사가 더 많은 택배노동자를 고용해야한다는 의견이 배송지연을 감수하겠다는 의견보다 많았다.

지난달 29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요금 인상 필요성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필요하다’는 응답이 55.7%(매우 필요하다 13.7%, 필요한 편이다 42.0%)로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 39.0%(전혀 필요하지 않음 12.7%, 필요하지 않은 편 26.3%)보다 많았다. 

주 5일제 제도화 방안에 대해선 ‘택배사가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배송 지연 없이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65.3%로 다수였고, ‘택배 노동자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이용자도 배송 지연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은 27.1%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도 주 5일제 제도화 주장에 대해 ‘택배사가 주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구체적으로는 60대(택배사 주도 개선 70.4%, 배송 지연 감수 25.7%)와 40대(68.9%, 29.4%), 20대(66.3%, 28.6%), 30대(65.2%, 27.7%), 50대(63.8%, 29.1%)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70세 이상에서는 ‘잘 모르겠다’라는 유보적 응답이 25.8%로 평균 대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8일 하루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7474명에게 접촉해 최종 500명이 응답(응답률 6.7%)했다. 무선(80%)·유선(20%)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정부, 택배기사·일용직 소득정보 파악 시스템 구축 나선다

정부는 일단 예술인과 특고, 프리랜서 등의 소득정보 파악체계 구축을 적극 추진한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용범 1차관 주재로 ‘한국판 뉴딜 자문단 안전망강화 분과 제2차 회의’를 열고, 고용안전망 확대를 위한 소득파악 체계구축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일자리 충격이 임시직과 일용직,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등 고용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하지만 현재 고용보험제도는 상용 임금근로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코로나19 충격이 집중된 취약계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차관은 “특고, 자영업자에 이르는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현행 소득정보 파악체계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근로형태를 포괄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소득정보가 제때 정확히 제공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고용보험을 특고·프리랜서 등 취업자 전반으로 확대하면서, 이를 위한 소득정보 인프라도 상당부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은 2013년 복지제도 전반을 개편하면서 고용주가 취업자의 소득정보를 실시간 제출하는  ‘소득파악 정보구축 및 연계시스템’을 도입해 복지제도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김 차관은 “전 국민에 대한 소득정보 파악체계가 구축된다면 고용·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라는 직접적 편익 외에 경제·사회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보편·선별 지원 논쟁이나 복지정책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기준 등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전 국민 소득정보 파악체계 구축은 방대하고 지난한 작업이지만 기존 고용복지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혁신한다는 측면에서도 가장 뉴딜다운 사업”이라며 “탄탄하고 촘촘한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전제조건은 전국민 소득정보 파악체계 구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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