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수의 마음 돋보기

문광수 교수중앙대학교 심리학과
문광수 교수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최근 탈(脫) 안전이라는 말이 안전관리 팀/부서 직원들과 관리자들 사이에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안전 담당 업무를 ‘그만두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유독 안전분야에서 이러한 단어가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정부와 관련 공공기관 역시 안전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안전 진단과 점검(본사, 원청, 자체, 고용노동부, 국토부 등)이 증가하였다. 특히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재해 발생에 민감해진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정기적인 안전진단과 점검은 안전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 안전점검을 통해 기존에 간과해왔던 여러 위험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고, 안전관리 과정이나 전반적인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사고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검이 과도하게 진행되다 보면 지적 사항들을 안전 담당 직원들이 확인,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단기간에 많아져 업무 부하를 경험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나 국토교통부의 안전점검은 법 위반 사항들에 대해 처벌적인 과징금이 부과되고 이에 대한 책임이 안전 담당 직원들에게 돌아가게 되면 이 역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전 담당 직원들이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지면 이로 인해 현장 관리자들이나 직원들에 요구하는 서류 작업도 많아진다. 물론 필수적인 서류 작업과 행정 업무는 필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현장에 과하게 부과되면 안전관리에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 기업의 공장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안전 점검의 날’에 기계나 장비를 점검/보수하고, 위험요소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기는 어렵고, 안전 쪽에서 요구하는 것이 많아 여러 가지 서류를 처리하기가 바빠 실질적인 안전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현장 직원들과 안전 담당 직원들 간에 갈등이 심해지고, 오해의 골이 깊어지면서 안전에 대한 협조가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무엇보다 후행 지표(사고나 재해 건수 같은 결과)를 기준으로 안전 담당 직원들의 성과 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되면 안전 담당 직원들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한 집단의 개들에게는 전기충격을 주었을 때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멈추게 하였고 다른 집단의 개들에게는 전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였다. 즉 개들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조작을 해도 전기충격이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 낮은 파티션을 건너기만 하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멈췄던 개들은 쉽게 건너가 전기충격을 피하였지만, 피할 수 없는 전기충격을 받았던 개들은 파티션을 건너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전기충격을 받으면서 낑낑댔다. 즉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결과를 피하거나 중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나 시도들을 했지만 결과가 변하지 않고 혐오적인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더 이상 어떤 시도나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안전 담당 직원들이 사고 예방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하는 상황에서도 사고가 발생하면 “뭘 해도 어쩔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이는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회사 내에서 안전 담당 직원들의 상대적 지위가 낮고 권한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 있다. 안전관리를 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연히 사고 발생 가능성은 증가한다.

우리 회사의 안전진단이나 점검체계가 어떠한지 즉 효율적이고 효과적인지, 그리고 안전 담당 직원들의 지위와 권한은 어떠한지 다시 한 번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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