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광활한 시베리아의 평원 그리고 눈과 얼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서는 10월이 되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4월이 끝나도록 싸락눈이 내린다. 그러다 6월이 오면 여름다운 여름이 오기 시작하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백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짧지만 환상적인 아름다운 계절이 펼쳐지는 시기가 이때다. 더불어 인사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방긋 웃어주는 여성들, 자연친화적인 건물 조경 등도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교역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에서는 자동차 4대 중 1대가 한국 자동차다. 또 LG전자는 여름이 50~70일 밖에 되지 않는 러시아의 계절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잘 견디지만 더위는 잘 참지 못하는 이곳 국민들의 특징을 잘 분석해 에어컨을 가장 먼저 공급했고, 그 결과 점유율이 35%에 달한다. 러시아에서는 안전과 관련해 배울 점도 많다.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가 과거 러시아를 왕래하며 눈으로 본 주요 안전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도어 스토퍼가 설치된 곳을 보지 못하였다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피난계단 및 특별피난계단의 출입구에는 방화문을 설치해야 한다. 방화문은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는데, 방화문은 열기도 불편하고, 외관상으로도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아서 도어 스토퍼를 설치해 상시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방화문이 닫히지 않도록 도어 스토퍼 등으로 고정시켜 놓을 경우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러시아를 자주 오가면서 방화문에 도어 스토퍼를 설치한 사례를 본 적이 없었다. 더 인상적인 점은 도어 스토퍼를 판매하는 곳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둘째, 방화문에 도어클로져가 있지만 열에 의해 작동되는 감지장치를 설치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방화문은 화재로 인한 연기,  불꽃 또는 온도를 감지하여 자동적으로 닫히는 구조로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 규칙을 적용하여 방화문을 설치하기는 하되 사용상 편의를 위해 도어클로져에 온도를 감지하는 퓨즈를 설치하여 평상시에 항상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온도를 감지한다는 것은 열을 감지한다는 의미다. 즉, 연소 시 발생하는 연기, 불꽃, 열 중 가장 늦게 감지되는 것이 열이므로 방화문이 제때 닫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도어클로져에 온도퓨즈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용상 너무 불편하여 평상시에 방화문을 꼭 열어놓아야 한다면 온도퓨즈보다 수 십배 비싸기는 하지만 도어릴리져를 설치하여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연동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면 연기를 감지하여 방화문을 닫히게 할 수 있으므로 화재 시 보다 빠르게 방화구획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방화문에 도어클로져가 있지만 편의상 열에 의해 작동되는 감지장치를 설치한 경우를 찾기가 어려웠다. 좀 불편하더라도 평상시 항상 닫힌 상태로 관리하고 있고 출입 시에만 열어서 사용하는 습관이 잘 정착돼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출입문이 유리문 등으로 되어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용승강기를 화재 시 소방관의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비상용승강기의 구조로 하여 승용승강기와 겸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비상용승강기의 승강장은 각층의 내부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되, 그 출입구에는 방화문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피난층에는 방화문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피난층인 1층의 출입문은 미관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유리문 등으로 해 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사례가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를 꼽을 수 있다. 당시 필로티구조인 1층 주차장에서 발생한 불이 1층의 유리문을 통해 순식간에 계단으로 퍼져 전 층으로 급속히 화재가 확산됐다. 1층이 방화문으로만 되어있었어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방화문에 대한 이런 예외규정을 보지 못했다. 이곳에서 피난층을 포함한 출입문의 방화문 설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미관상 좋지 않고, 열기 불편한 방화문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안전도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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