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고용노동부는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를 발표했다. 이 수치가 발표되기 전부터 노·사·민·정 등 각계에서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에 어떠한 효과를 미쳤는지 엿볼 수 있는 성적표인 동시에 그동안 정부가 산재 사망사고 절반 감축을 위해 펼쳐온 산재예방 정책의 실효성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받아든 성적표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든다. 사실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재 사고 사망자는 전년 동기 보다 27명(3.2%) 증가한 882명으로 집계됐으며, 특히 안전 취약업종으로 손꼽히는 건설업에서의 사고 사망자는 전체 업종의 절반을 넘는 458명(51.9%)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내년 1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현재 법 제정을 계기로 산업현장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우선 주요 대기업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내 10대 그룹사들이 최근 도입 중인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 시스템에 안전 최우선 경영방침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헌데 이들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법의 제정 취지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러한 움직임의 원동력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는 느낌은 기우(杞憂)는 아닐 것이다.

물론 ‘1년 이상의 징역’, ‘최대 50억 원 벌금’ 등 법에 명시된 내용들만 보만 기업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법의 제정 취지다. 국민들이 법 제정에 찬성하고 공감했던 이유는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이를 계기로 기업 경영자들이 투철한 안전 리더십을 갖추고 안전에 대한 비용을 ‘낭비’가 아니라 ‘투자’로 인식해 달라는 것이며, 안전하지 않으면 결코 작업하지 않도록 하는 일터의 분위기가 산업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기업들이 단순 면피용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재해예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노동자, 민간재해예방기관에서도 기업들이 안전역량을 지속 유지·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빈틈과 공백을 보완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안전은 기업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산업현장 안전관리 수준 향상을 위한 안전산업 육성에 주력하는 가운데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세심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또한 노동자들은 ‘나 하나 쯤은’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나부터라도’라는 주도적인 안전의식으로 무장하고 작업 중 기본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번 성적표를 통해 산업재해는 법과 제도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제는 모두의 노력에 달려있다. 안전이 ‘남의 일’이 아님을 인식하고,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안전의 몫’을 충실히 해낼 때 중대재해처벌법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가까워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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