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용어 중 ‘간과된 위험(Neglected Risk)’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위험이라도 눈에 보이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큰 위험도 과소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행태는 안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산업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위험요인은 작업자 대부분이 제거하거나 피하며 대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장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전을 소홀히 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밀폐공간 질식재해’다. 질식재해는 눈에 보이지도, 소리도 없지만 단 한 번의 호흡만으로도 의식을 잃고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316명이 밀폐공간 질식재해를 당했는데, 이중 과반이 넘는 168명이 사망했다. 일반 사고성 재해 사망률이 1.1%인데 반해, 질식사고는 53.2%에 달할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다.

이처럼 치명적인 위험에도 밀폐공간 질식재해가 매년 반복하여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질식사고의 대부분은 밀폐공간에 들어가기 전 산소 농도를 측정하지 않거나 환기 및 호흡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는데, 이 모두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위험요인을 인지하고, 이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작업 전 작업자들이 밀폐공간의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하는 것이다. 밀폐공간 출입구에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질식 위험성을 경고하는 표지를 부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업 전에는 반드시 산소나 유해가스를 측정하고, 호흡보호구를 착용한 채 작업하도록 해야 한다. 작업 중에도 수시로 환기를 시켜야 한다. 작업 전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가 정상일지라도 분뇨, 오수, 펄프액 등 부패하기 쉬운 물질이 있는 밀폐공간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유해가스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적정공기는 산소농도는 18% 이상 23.5% 미만이며, 이산화탄소 농도는 1.5% 미만, 일산화탄소 농도는 30ppm 미만, 황화수소 농도는 10ppm 미만이다.

구조작업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료 근로자를 빨리 구조하겠다고 안전장비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인명피해만 키울 뿐이다. 실제로 질식재해를 당한 동료를 구출하다가 함께 숨진 안타까운 사례가 굉장히 많다. 따라서 응급 상황 시에는 신속히 119나 관리자에게 연락하고, 구조 시에는 공기호흡기 등 호흡보호구를 필히 착용해야 한다.

밀폐공간에서의 작업은 특성상 위험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장소와 시간, 환경에 따라 발생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 질식재해는 분명히 예방할 수 있다.

올해 기온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3월 평균.최고.최저 기온이 모두 1973년 과학적 기후통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났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철저한 준비를 갖춰 올해는 산업현장에서 질식재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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