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 하청, 無자격 시공·이면 계약 의혹
‘허가·감독’ 부실 행정도 수사 선상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구역 철거물 붕괴·버스 매몰사고도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지난 2019년 7월의 서울 잠원동 붕괴사고와 닮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고의 수사 속도를 내고 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정해진 작업 절차를 어긴 공정 등의 의혹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부실 관리·감독 의혹도 살피고 있다. 수사 결과와 전문 감정 등을 토대로 정확한 참사 원인·경위도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심하게 찌그러진 버스에서 사고 당시의 참상을 엿볼 수 있다.
심하게 찌그러진 버스에서 사고 당시의 참상을 엿볼 수 있다.


 

◇불법 다단계 하청으로 공사 진행
현대산업개발로부터 공식 철거 용역 계약을 맺은 ㈜한솔은 지난달 14일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등 건물 11채(붕괴 건물 포함)를 해체하겠다’며 동구에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실제 공정엔 허가를 받은 ㈜한솔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일반 철거는 시공사인 한솔이 ‘백솔’에 불법 하청을 준 것이다. 또한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했으나, 백솔에 재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 업체인 백솔은 다른 업체에서 석면 해체 면허를 빌린 무자격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분을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이면 계약 정황 등도 확보하는 등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계획된 작업 절차 어긴 철거 공정
철거 공사의 불법 하청을 받은 백솔은 해체계획서 상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하향식)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기고, 1~2층을 먼저 허물었다.

이후 건물 뒤쪽에 쌓아둔 흙·폐건축 자재 더미 위(3~4층 높이)에서 굴삭기가 중간부 해체 작업을 했다. 또한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허물어야 하지만 뒤쪽 벽부터 부쉈다.

백솔 대표이기도 한 굴삭기 기사는 장비 하중(30여 톤 추정)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작업을 무리하게 진행했다.

경찰은 ‘3층 높이로 쌓은 흙더미 위에 올랐지만 굴착기 팔이 건물 5층까지 닿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뜯어내려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붕괴 당일 과도한 살수 작업
철거 중 발생하는 먼지를 줄이고자 물을 뿌리는 살수 작업이 참사 당일 과도했고, 흙·폐자재 더미 등에 하중을 더해 붕괴로 이어졌다는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먼지 발생량이 많은 압쇄 공법은 살수가 필요한 만큼, 현장엔 고압 펌프 설비가 4대 가량이 투입됐다. 그러나 붕괴 당일엔 2배 많은 설비가 투입돼 철거 공정 중 물을 뿌렸다.

일각에선 갑작스럽게 많은 물이 굴삭기를 지탱하던 흙·폐건축 자재 사이에 스며들어 흘러내리면서 붕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측의 살수 확대 지시 유무와 구체적 내용 등도 확인 중이다.


◇부실 허가·위험 경고 민원 경시
25쪽 분량의 해체계획서가 부실하게 쓰여진 점도 드러났다. 층별 철거 계획이 부실했고, 국토교통부 고시와 달리 주요 철거 장비인 굴삭기 하중을 계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흙·폐자재 더미로 인해 지하층이 받는 하중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계획서엔 지하층 해체에 따른 지반 영향만 검토하면서 ‘주변을 굴착한 후 지하 구조물을 해체하므로 토압에 의한 붕괴 위험이 없다’고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안전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철거를 허가한 관할 자치구의 감독 책임도 수사 사항 중 하나다.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민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붕괴 두 달 전엔 같은 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옛 축협)의 사고 위험성을 제기하는 공익 제보가 있었고, 한 달 전에도 안전 위협 민원이 잇따랐다. 하지만 동구는 구두 통보, 공문 발송 조치만 했다.

경찰은 관계 공무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통해 관리·감독 소홀 여부도 따지고 있다.


◇정확한 붕괴 원인·경위 수사
경찰은 ▲부실한 건물 지지 ▲하중 등 구조 안전을 경시한 철거 방식 ▲과도한 살수에 따른 하중 증가 ▲건물 내 굴삭기 진입 여부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현재로선 붕괴 원인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안전관리·감독을 책임지는 감리자를 입건해 자세한 붕괴 경위를 파악 중이다.

경찰은 전문기관 감정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조사 결과 등을 두루 검토해 정확한 붕괴 원인·경위를 규명할 방침이다.

지난 13일 경찰의 한 관계자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진 정황을 확인한 만큼, 정확히 어떤 지시 체계에 의해 철거가 이뤄졌는지 밝힐 예정이다”면서 “다수의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고 엄정 수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진·동영상 제보 받는다
이번 사고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사조위는 붕괴사고 관련 사진·동영상 등의 시민 제보를 받는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조위는 지난 11일 착수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조위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기 위해 건물의 붕괴 전후 과정을 참고할 수 있는 국민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자료접수 및 문의는 이메일(csi@kalis.or.kr) 또는 사조위 사무국(055-771-1701)으로 할 수 있다.

이영욱 사조위 위원장(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붕괴 전 위험조짐 또는 붕괴 과정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원인 규명의 결정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적극적 제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부, 철거 공사현장 긴급 안전점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전국의 모든 철거 현장에 대해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노 장관은 지난 10일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분들께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이번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이 먼저이다.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에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국의 철거공사 현장에 대해 국토부와 지자체와 합동으로 긴급 안전점검을 전면 실시하려고 한다”며 “상세한 내용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토부는 지난 13일 전국 3만여 개소에 달하는 해체공사 현장의 안전점검 활동 이행력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GIS 정보를 활용해 사고 위험도가 높은 현장을 분석한 후, 일차적으로 140여개 현장에 대해 안전점검을 추진할 계획이다.

GIS 분석은 세움터를 통해 건축물대장과 해체계획서 정보를 받아 건축물의 높이, 도로 이격거리, 버스정류장 인접 여부 등 정보를 종합·분석해 위험도가 높은 현장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안전점검에는 국토부를 비롯해 지방국토관리청, 국토안전관리원,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점검 항목은 ▲인허가 당시 제출한 해체계획서대로 시공 여부 ▲감리자의 업무 수행 적정성 여부 ▲현장 인접한 건축물·도보 안전조치 여부 등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해체공사 잘못된 관행 도려낼 것”
사고 이후 각 지자체에서는 유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에서 세부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부터 해체공사 현장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을 철저히 도려내겠다”고 밝혔다. 철거공사 현장에서 해체공사 감리자의 상시 감리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강력한 처벌 조항을 담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통해 “해체공사의 안전관리는 감리자의 상주 감리 여부와 직결된다”며 “해체공사 감리자가 상시 감리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처벌 조항을 담은 법률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법률 개정에 앞서 서울시는 현재 상주감리 현장에 대해 해체공사 중 3회 이상 불시 점검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해체 허가 시 심의를 통해 위험구간에는 안전펜스 설치를 의무화한다. 또한 버스정류장, 대로변, 어린이 통학로, 학교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에 접한 건축물의 해체 시에는 안전확보 방안이 해체계획서에 반영토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다단계 불법 하도급과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적발 업체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등록 취소 등의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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