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모처럼 기운을 북돋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회의에서 우리나라를 기존 개도국 그룹에서 미국·영국·일본 등이 속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개도국 그룹으로 분류된 국가가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된 사례는 UNCTAD의 57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도 무방할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량(GDP)는 1조 5512억 달러로 세계 경제 10위권의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GNI)도 3만1881달러를 기록하며 G7 그룹인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또한 K-POP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미국과 일본 등 양대 음악 시장을 흔들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상이나,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최근 한국어로 칸 영화제의 개막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모습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경제·문화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 부르기에는 영 뒷맛이 개운치 않고,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주변에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국민들이 당당한 선도국가의 일원으로 자긍심과 긍지를 갖기 위해서는 꼭 선결돼야 햐는 과제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안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62명에 달한다. 삶을 살아가고 지탱하기 위해 나선 일터에서 사고나 질병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하루 평균 많게는 6명에 달하는 셈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자 변치 않는 현실이다.

일터에서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국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구역에서 건물 철거 중 발생한 붕괴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안전보다 비용이, 세심한 관리·감독보다 방관이 앞섰던 그곳에서 버스에 타 있던 무고한 시민 9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올해 초 일터의 안전보건을 강화하고, 중대재해로부터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공포됐음에도, 이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3일 공식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 ‘산업안전보건본부’의 향후 활동에 많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기존 고용부 내 국 단위 조직인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이 직제 개정으로 확대·개편된 본부는 앞으로 중대재해 예방의 컨트롤 타워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안전관리가 취약한 건설현장을 밀착관리·감독하는 가운데 사업장별 안전보건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산재예방 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민간재해예방기관 등과 적극 협업하는 한편 사업장에 대한 감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본부 활동 방향의 주요 골자다. 

그런데 아무리 법과 제도가 강화되고, 관리·감독이 촘촘해 지더라도 ‘강제’에 의한 변화는 근본적인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한계에 봉착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 경험해 왔다. 때문에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이 안전의 위상을 경제.문화강국의 면모에 걸맞게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다.

산업안전보건본부가 공식 출항식을 거치며 안전 선진국을 향한 본격적인 항해는 시작됐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만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성장 위주의 돛’을 잠시 내리고 균형 잡힌 ‘안전의 돛’으로 바꿔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배는 순항할 수 있고, 우리 국민 모두가 스스로 자긍심을 갖출 수 있는 손색없는 선진국으로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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