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모호한 표현 많아 법 집행 과정에서 부작용 우려”
노동계 “법 의미 축소,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기준에 불과”
고용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의견 수렴 토론회 개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8~19일까지 이틀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고용부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노.사 의견을 바탕으로 시행령 제정안의 수정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제공 : 뉴시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8~19일까지 이틀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고용부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노.사 의견을 바탕으로 시행령 제정안의 수정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제공 : 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지만 노·사간의 극명한 입장차만 재확인했다.
고용부는 지난달 18~19일까지 이틀간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핵심 이슈인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와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고용부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노사 의견을 바탕으로 시행령 수정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3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형사처벌 따르는 만큼 요건 명확해야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쟁점 중 하나다. 시행령은 법에서 위임한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했는데, 이에 대해 경영계는 ‘불분명하다’, 노동계는 ‘법의 의미가 축소됐다’고 비판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충분한 논의와 검토과정 없이 제정되다 보니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 등 내용들이 여전히 불명확하고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조항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중대재해처벌법은 형벌 법규이고, 시행령에 규정된 내용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되는데, 시행령에서 ‘충실하게’, ‘적정한’ 등과 같이 모호한 표현과 기준이 상당해 법집행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들이 이 법을 준수하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하면 법을 준수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라며 “형사벌인 만큼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그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도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 감독관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고 하소연하는 등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의무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예방 핵심 대책 없어
노동계는 시행령 제정안에 명시된 안전보건확보 의무가 오히려 법의 의미를 크게 축소했다는 지적이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관련된 내용 중 안전보건에 대한 목표와 방침을 정하고, 안전보건의 전담조직을 갖추라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내용과 중복된다”라며 “제정안에 담긴 의무사항은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기준 정도 규정으로서 규모가 있는 법인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기준보다 강화하고, 동시에 시행령 의무를 법인이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지도하는 측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고 용도에 따라 집행·관리한다’는 조항은 하도급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보호구 비용 등을 협소하게 규정한 것으로 핵심 대책이 될 수 없다”라며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의 경우에는 보호구 지급 비용이 매우 낮게 책정되거나 없어 품질, 수량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직업성 질병 범위에
중증도 포함해야”


◇안전·보건 법령 명확하게 규정해야
안전·보건 관련 법령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못한 것도 지적사항이다.
임우택 경총 본부장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시행령에 전혀 규정하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의무 범위를 예측할 수 없다”라며 “감독기관이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를 재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자의적인 법 집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위임근거가 없어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나, 형사처벌을 하는 법률의 적용을 정부가 임의로 판단하여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임 본부장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범위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하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보건 관련 법령에 근기법 포함 필요
노동계 역시 안전·보건 관련 법령이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 폭은 경영계보다 넓다.

김광일 한국노총 본부장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는 광산안전법, 원자력안전법, 항공안전법, 선박안전법,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근로기준법 내의 과로에 대한 내용 및 직장 내 괴롭힘 내용, 휴식·휴게시간 등을 포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본부장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포괄적으로 설정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찰, 검찰이 담당하여 수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경찰이나 검찰은 각 관계 법령과 관련된 정부부처와 협약을 맺고,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 해당 부처 및 기관의 조사 결과를 취합해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실장은 “안전보건관계 법령을 특정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수사, 기소 단계에서부터 대상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라며 “안전보건관계 법령 중 핵심 법령을 명확히 규정하고, 기타 조항으로 추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기준법에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방지,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예방 등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라며 “근로기준법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과로사, 일터 괴롭힘 등의 발생에 따른 재해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인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놓고도 노사는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을 중대산업재해로 정의하고, 구제적인 사항은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했다.

이에 시행령은 각종 화학적 인자에 의한 급성중독, 염산 등에 노출되어 발생한 반응성 기도과민증후군 등 24가지 질병을 ‘직업성 질병’으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노사 모두 만족하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직업성 질병을 사망에 준하는 중대한 질병으로 한정할 수 있도록 ‘중증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뇌.심혈관계 질환 등도 직업성 질병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임우택 경총 본부장은 “질병자 범위를 유해인자에 따른 상병으로 규정하였을 뿐 ‘6개월 이상 치료 부상자’와 같은 중증도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경미한 질병도 주관적 증상 호소 등에 의해 모두 직업성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라며 “‘급성 중독’ 자체를 중증도가 반영된 질병 목록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하나, 중독 증상을 보인다 할지라도 짧은 기간의 치료와 휴식으로 회복되는 경미한 사례가 더 많아 중증도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임 본부장은 “직업성 질병의 목록에 ‘6개월 이상 치료 필요’ 등 중증도 기준을 마련하고, 주관적 호소에 의존하기 쉬운 경미한 증상은 목록에서 삭제하는 등의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 본부장은 “‘1년 이내에 3명 이상’이라는 직업성 질병 발생의 판단 기준을 규정하지 않아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라며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승인일 기준으로 ‘1년 이내에 3명 이상’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실장도 “사고로 인한 부상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 치료 필요’라는 중증도 요건을 규정했지만 질병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며 “형평성을 고려해 중증도 반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성질환 제외되면서
실효성 없어”

◇시행령으로 법 조항 무력화됐다
노동계는 직업성 질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만성질환(진폐, 난청,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및 직업성 암이 제외되면서 실효성이 없는 조항이라는 주장이다.

김광일 한국노총 본부장은 “경영계는 구체적인 중증도가 정해지지 않아서 경미한 질병도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20년 기준 업무상 질병 승인자의 평균 휴업급여지급일은 180일로 중증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재해 발생의 원인이 사고에 기인하거나 장시간 노동,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 정신적 긴장이 큰 노동 등이 직업성 질병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실장은 “시행령으로 제시된 24개 급성중독 질병이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는 최근 10년 동안 없었다”며 “사실상 법 조항을 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 실장은 아울러 “시행령에 따르면 직업성 질병에 따른 사망은 법 적용 대상이 되고, 식물인간 등 장기 치료는 적용되지 않는다”라며 “동일한 질병임에도 사망 여부가 대상 기준이 되는 비상식과 불합리한 결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