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객관적 데이터 분석 및 연구가 수반돼야 법・제도의 현장 작동성을 높일 수 있어

지난 1989년 7월 설립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일터의 안전보건 증진을 위한 다양한 연구・조사・기술개발 등을 수행하는 국내 유일의 공공연구기관이다. 

최근에는 건설업종에서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책 및 기술연구를 비롯해 직업성 암이나 과로사 문제 해결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이처럼 산재예방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연구원에 김은아 연구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 원장은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역학조사팀장, 직업건강연구실장 등을 거쳐 올해 초 연구원장에 임명됐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실무 연구진들이 겪는 고충과 니즈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실현 가능한 연구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현장중심의 실무형 리더’로 연구원 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탁월한 업무 역량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올해 산업안전보건강조주간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는 그간 산재예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장을 만나 우리나라 산업현장 안전보건 문제의 해법, 그리고 그가 그리는 연구원의 미래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은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김은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Q. 연구원장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의과대학에서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한 전문의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문제에 부쩍 관심이 많았습니다. 건강불평등, 직업병, 환경질환 등 각종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행동으로, 행동이 신념으로 이어지면서 저의 진로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을 찾다가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연이 닿게 되었고, 직업병 역학조사, 기술연구 등 일터에서의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경험을 쌓은 결과, 올해 초 연구원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Q.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원장님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급격한 성장과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우리나라를 기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하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최초의 사례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급속도로 성장해 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빨랐던 속도만큼 부작용도 잇따랐습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오는데 익숙하다 보니 성장과 발전이라는 최우선 가치 외의 것들은 소홀이 여기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터에서의 ‘안전보건’ 문제입니다.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 수는 2,06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많게는 6명에 달하는 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지위나 위상을 감안했을 때 시급히 손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수십 년간 고착화되고, 복잡한 문제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 2018년부터 산재 사망사고 절반 감축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안전보건 연구 인프라,

행정 전담기관,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을 수행하는 시민사회



Q. 끊이지 않는 일터에서의 산재 사망사고, 해법은 있을까요?
빠른 시일 내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보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차근차근 기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우리사회가 크게 세 가지 분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안전보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강화하고, 그에 걸맞은 전문 인력을 육성해야 합니다. 영국, 독일 등 이른바 안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강력한 법과 제도 뿐 아니라 우수한 안전보건 연구 인프라 및 풍부한 전문 인력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안전보건 연구 인프라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 중 하나는 일터의 안전보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 및 연구 활동이 수반돼야만 법과 제도의 현장 작동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행정력을 집중할 수 있는 전담기관이 필요합니다. 때마침 최근 고용노동부 내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습니다. 본부는 향후 산업안전보건청으로 승격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전담기구이자 중대재해예방의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빈틈없는 준비를 통해 앞으로 안정적인 행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안전보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을 수행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요구됩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과거에 비해 안전보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크게 달라진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실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시민단체가 적극 목소리를 내고, 언론 등 각종 미디어에서 주요 뉴스거리로 다뤄지는 것이 일상화 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모두가 안전보건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잘 운영되고, 또 꾸준한 견제와 비판, 안전보건에 대한 소통과 공감이 지속된다면 일터에서의 산재 사망사고도 분명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 다운 연구원 만들기

Q. 연구원을 이끌어가면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연구원다운 연구원’ 만들기. 제가 올해 초 연구원장으로 취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었습니다. 연구위원부터 시작해 연구원장의 자리까지 오르다 보니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연구진들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배우인 것처럼, 연구원은 과학적이고 엄밀성을 갖춘 결과를 도출해 정부와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국민들이 우리 연구원에 거는 기대이고, 우리 연구원이 지향해야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취임 후 연구 활동과 관계없는 부수적인 것들은 배제하고, 오로지 연구원들의 역량과 전문성, 기술력 등 실무적인 부분만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 그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 마련 등에 주력해 왔습니다.

남은 임기까지도 연구원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노력할 계획입니다.
 

Q. 앞으로 연구원의 안전보건 연구개발 방향과 추진 계획 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 우리 연구원은 산업현장 주요 현안으로 손꼽히는 산재 사망사고 감소를 위한 정책, 취약계층 노동자 건강관리방안, 미래환경 대응을 위한 스마트팩토리 구축 등에 중점을 두고 연구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방향의 연속성을 유지하되 미흡한 부분은 개선하는 식으로 지속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노동 형태・환경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 비대면의 일상화로 인해 플랫폼 노동 규모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안전보건규정만으로는 세심한 관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우리 연구원에서는 올해부터 포스트 코로나 TF팀을 운영해 왔으며, 최근 그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핵심 안건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내년에는 학계와 함께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세부과제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외에도 올해부터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제도가 개정 시행되는 등 최근 안전보건 분야에 변화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모두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유용한 정보입니다. 이에 연구원은 국민들이 이러한 안전보건 정보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도록 각종 간행물, 미디어 등을 활용한 홍보에 주력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연구원은 과학적 토대 위에 도출한 결과를 국민 여러분들의 곁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연구원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재해 감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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