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故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며 작심하고 호통을 쳤다. 기존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품질 등 질적 요인을 소홀히 하는 관습에 빠져있던 삼성 임직원들에게 대대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의 시작이었다.

이 회장의 신경영 대장정은 수개월간 계속됐다.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수차례의 강연에서 이 회장은 “자율이다.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서 많이 기여해.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서 적게 기여해.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며 변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자신부터 변했다. 1995년 3월 9일 애니콜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벌어진 ‘애니콜 화형식’이 대표적인 예다. 이날 이 회장은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만 급급해 높은 불량률로 악명이 높았던 애니콜 휴대폰 500억원 가량을 부수고 불태웠다.

영리 추구가 기본인 사업가이자 최고 경영자로서 뼈와 살을 깎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이날 임직원들에게 보인 명확한 메시지와 확고한 리더십은 오늘날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확고한 원동력이 됐다.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된다.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재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기업 내 전사적 안전보건관리를 총괄하는 C레벨(Chief)급의 임원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내에서 안전 조직의 위상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고무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안전보건조치 소홀로 사망사고 발생 시 ‘1년 이상의 징역’을 면하기 위한 관점에서 고려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직문화는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등이 안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도 크게 손해 보지 않는 기존 산안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안전을 도외시 한 채 오로지 성장과 발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온 경영책임자 등에게 확고한 안전의식을 갖추고 빈틈없는 자율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이 법의 제정 취지다. 

외형뿐 아니라 조직문화부터 변화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둬야 한다.

여기서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고 경영자가 여전히 안전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변화하지 않는다. 故이건희 회장의 사례처럼 최고경영자들이 안전에 대한 확고한 리더십과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 내 관습처럼 뿌리내린 안전불감증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곧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다. 이번 종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확고한 메시지를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에는 안전과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 많이 변화할 사람은 많이 변화하라. 적게 변화할 사람은 적게 변화하라. 다만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고 말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