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카 근로자 “안전장치 없이 위험작업 강요해”

하루 9시간 이상 서서 일하는 ‘유통업체 근로자’
지난 21일 서울역과 과천정부청사 앞은 피켓과 현수막을 든 이들로 북적였다. 한쪽은 유통업체서비스 근로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모였고, 또 한쪽은 펌프카 근로자들의 안전보건 향상을 위해 모였다.

장소가 다르고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이 달랐지만 이날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같았다. 바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의 근로자들에게 안전과 보건을 선물해주자는 것이었다. 이들이 왜 거리로 나서야 했는지, 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리해봤다.


안전보건 사각지대, 서비스업 근로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등으로 이루어진 ‘서비스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캠페인단(이하 캠페인단)’은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장시간 및 야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서비스업(유통업체) 근로자들의 건강권 보호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이 이같은 움직임에 나선 것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유통업체간 경쟁 속에 서비스업 근로자들이 안전보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날부터 ‘의자 캠페인’을 펼칠 것을 밝혔다.
참고로 ‘의자 캠페인’은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의자를 제공해달라는 캠페인으로, 지난 2008년 민주노총이 처음 시작했다.


업체 과열경쟁 속 피멍드는 근로자

1996년 WTO GATS 협정에 의해 유통시장이 전면개방 된 후, 국내업체와 외국업체 간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백화점, 대형마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0년 기준으로 대형마트 점포수만 430여개에 이르렀을 정도. 이는 시장규모 적정선인 250~300여개(인구 15만명 당 1개)를 훌쩍 넘는 수치다. 이처럼 유통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하자 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서비스업 근로자의 안전보건은 점차 약화됐다. 장시간 그리고 심야 근무는 물론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08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의 근로자 38만4천여명 중 약 20만4천여명이 서서 일하는 근로자로 추정된다. 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의하면 유통업 서비스직종에 종사하는 여성근로자의 78%가 9시간 이상 서서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서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하지정맥류, 무릎 및 관절질환, 요통, 디스크, 근육통 등 각종 질병의 발병 위험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감안, 이날 모인 노동계는 서비스업 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작업장 내 쉴 수 있는 의자의 지급을 대형유통업체에 요구했다.

사실 근로자에게 의자를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명시된 사안이다. 산업안전보건법 보건규칙 제 80조에서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비치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 하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듯이 근로자에게 의자를 제공중인 대형 유통업체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의자캠페인 적극 전개

캠페인단은 앞으로 ‘의자가 없는 곳에는 의자를’,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하는 곳에는 쉴 권리를’, ‘불량한 의자가 제공된 곳에는 제대로 된 의자를’이라는 세가지 슬로건을 걸고 2차 의자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가기로 했다.

또 캠페인단은 캠페인과 더불어 9월부터는 의자제공실태를 조사한 후 미제공 업소를 당국에 고발하는 국민감시단도 운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들은 캠페인에 뜻을 같이하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 백화점, 대형마트 영업시간규제와 의무 휴일제 도입을 제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입법 활동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캠페인단의 한 관계자는 “서비스업 근로자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국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펌프카 근로자 안전보건 수준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올 1월부터 5월에 걸쳐 전국의 펌프카 근로자 255여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밝혔다. 펌프카 근로자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건설노조 이영철 사무국장은 “조사 결과 펌프카 근로자의 대부분이 안전보건에 대한 보장도 없이 14시간 노동에 5시간 수면이라는 최악의 근무여건에 놓여 있었다”라며 “이번 실태조사가 단순한 폭로가 아닌 펌프카 근로자들을 포함한 모든 건설근로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첫 실태조사 결과 공개 ‘충격’

조사에 따르면 펌프카 근로자의 약 90%는 만성피로와 소화불량, 위궤양, 위염 등의 소화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건설노조는 현장 내 휴식공간이 없어 고강도 노동을 한 후에도 쉬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 펌프카 근로자의 54%는 장비전복, 슬라브 붕괴, 붐대 파손, 감전 등의 안전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산재 등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작업을 강요받은 경우도 무려 45%에 달했다.

아울러 위험작업시 안전조치없이 작업강행을 요구 받은 경우가 74%, 펌프카 차량결함에도 작업을 강요받는 경우가 77%로 나타나 펌프카 근로자들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원청 건설사가 책임지는 경우가 겨우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가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 국장은 “펌프카 사고의 경우 원청사에서 산재처리를 은폐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다 업체 사장의 해고위협 때문에 산재처리 요구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실한 건설현장 안전관리 여실히 드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건설현장의 부실한 안전관리 실태도 상당부분 공개됐다. 설문에 응한 펌프카 근로자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현장 내 안전관리현황을 낱낱이 밝힌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89%는 건설현장에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전문신호수가 없다고 답했다.

또 92%는 주업무인 콘크리트 타설 작업 외에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붐대를 이용해 철근이나 벽돌 등의 자재를 옮기는 불법인양작업을 강요받았다고 했으며, 이중 30%는 불법인양작업시 사고를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건설노조의 한 관계자는 “원래 벽돌 등 자재를 옮기는 일은 기중기 등의 장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나 원청 건설사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불법으로 일을 시키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붐대 꺾임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88%는 편법설치인 반자키 작업을 강요받은 적이 있으며, 이중 35%는 이러한 작업으로 전복 등의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참고로 반자키 작업은 공간부족, 작업시간 단축 등을 이유로 펌프카의 사방 네 곳 중 2곳만 고정시키고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지반침하나 무게쏠림 등으로 인해 장비전복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펌프카는 법령상 작업 시 사방 네 곳을 견고하게 다져진 지반에 고정시켜야한다.

펌프카 근로자에 대한 산안대책 ‘시급’

이날 건설노조는 고용노동부가 펌프카 근로자들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건설노조 박대규 부위원장은 “펌프카 근로자 대부분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가운데 사고를 무릅쓰고 위험작업과 불법적인 작업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조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용부가 펌프카 근로자의 근무환경 개선과 안전보건 향상에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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