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읽는 안전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홍성군의회 앞 왕버들나무 중심부에 노간주나무가 뿌리를 박아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 뉴시스)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홍성군의회 앞 왕버들나무 중심부에 노간주나무가 뿌리를 박아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 뉴시스)

◇뿌리 모든 것의 근본
뿌리는 유기체의 근본(根本)이다. 근본은 유기체의 생존을 좌우한다. 그래서 뿌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체이다. 나무의 뿌리는 그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저장한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듯이 나무도 인간처럼 경험을 저장하지 않으면 위험을 극복할 수 없다.

나무의 뿌리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인 CPU에 해당한다. CPU가 컴퓨터의 모든 것을 주관하듯이 뿌리는 화학작용을 통해 나무의 모든 활동을 조종한다. 나무의 잎, 꽃, 열매 등 모두 뿌리가 조정해서 만든 것들이다. 예컨대 장미과의 매실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 꽃을 피운 뒤 잎을 만드는 시기, 꽃이 진 뒤 열매를 만드는 시기, 잎을 떨어뜨리는 시기 등은 모두 뿌리가 결정한다. 그래서 나무마다 꽃, 잎, 열매, 낙엽을 만드는 시기가 다르다. 나무마다 지니고 있는특성을 이해하면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의 뿌리는 위기를 맞으면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다. 뿌리는 유독 물질이나 나아갈 수 없는 돌, 물기가 많은 땅을 만나면 상황을 분석해서 필요한 변화를 생장 부위로 전달한다. 그러나 인간은 일상에서 뿌리의 이 같은 역할을 알 수가 없지만, 나무의 줄기, 가지, 잎, 열매 등을 관찰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무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굵은 뿌리만이 아니라 잔뿌리들을 만들어 조정한다. 그래서 산길을 가다가 땅 밖으로 나온 뿌리를 보면 나무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땅 밖으로 나온 뿌리의 굵기는 나무의 균형을 의미한다. 만약 땅 밖으로 나온 굵은 뿌리가 북쪽 방향이면 나무가 남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다. 나무는 기운 반대 방향으로 굵은 뿌리를 만들어 넘어지는 것을 막는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잃어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균형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중요한 조건이다.

◇든든한 뿌리가 안전을 지킨다
모든 생명체는 언제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존재가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위험에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무는 뿌리가 땅 밖으로 나올 경우, 뽑힐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땅밖으로 나온 뿌리를 고정시키는 또 다른 뿌리를 만든다. 나무의 이러한 모습은 산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나무의 뿌리를 밟고 지나갈 뿐이다.

더욱이 나무는 오랜 기간 동안 뿌리가 땅 밖으로 나와 있어야할 경우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나무는 비에 흙이 씻겨나가 뿌리가 땅밖으로 노출되면 직접 다시 뿌리에 흙을 덮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하면 아무리 단단히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무는 땅밖으로 나온 뿌리를 줄기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가 땅밖으로 나온 뿌리를 줄기로 만들기 전에 할 일은 땅 밖으로 나온 뿌리에서 다시 뿌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 같은 사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은 많지 않지만, 나무의 뿌리에 관심을 가지면 종종 찾을 수 있다. 그 중 한 곳이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76호 은행나무이다. 이곳 은행나무의 뿌리는 거의 땅 밖으로 나와 있다.

언제부터 이곳 은행나무의 뿌리가 땅 밖으로 나왔는지 모르지만 현재 뿌리는 거의 줄기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반계리 은행나무가 8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위기 대처에 필요한 다양한 수단이었다.

◇함께 연대해야 안전한 삶을 유지하는 것
안전한 삶은 결코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의 연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곧 뿌리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 유타주의 판도(Pando)는 뿌리의 연대가 보여준 지구상의 가장 큰 생물이다.

판도는 버드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인 수컷 사시나무 한 그루가 무성 번식한 축구장 약 60개 면적(43㏊)에 4만7000그루 이상이 자라는 숲의 이름이다. 판도는 땅속에서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숲이다.

그러나 현재 판도는 인간이 만든 고속도로를 비롯해 건물과 캠핑장 등이 들어서면서 뿌리가 잘려나가 위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 비밀이 밝혀진 판도는 50년여 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식물과 동물의 구분 기준은 식량을 구하는 방식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이용하고 동물은 생명체를 먹는다. 그래서 동물은 식물의 삶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간은 한순간도 식물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식물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나무의 뿌리를 보기보다는 꽃과 열매를 바라본다.

뿌리는 사람의 뇌에 해당한다. 사람도 뇌를 다치면 생존의 위협을 받듯이, 나무도 뿌리를 다치면 위험에 빠진다. 모든 생명체가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조상을 뿌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뿌리를 찾는 이유는 자신의 삶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온난화로 유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인류가 맞은 지금의 위기는 그간 인간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 중에서도 생태의식의 결여는 안전한 삶을 위협한 중요 원인이었다. ‘생태(Eco)’는 모든 생명체의 ‘평등한 관계’이다. 인간이 나무를 자신의생명처럼 인식할 때 안전한 삶도 가능하다.

<글.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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