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순 학예 연구관(건축학 박사, 국립문화재 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
                               조상순 학예 연구관(건축학 박사, 국립문화재 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

문화재는 ‘보존’이 우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장된 문화재를 발굴할 때에는 유구(遺構)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사계획 수립이 매우 중요하며, 여느 작업보다 고도의 섬세함과 끈기가 요구된다.

매장 문화재 조사는 크게 지표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시굴조사에서는 유적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이른바 트렌치(trench)라고 하는 긴 구덩이를 파게 된다. 유구가 확인되는 범위까지 파내야 하다 보니 그 깊이는 얕게는 몇 센치(cm)에서 깊게는 수 미터(m)에 이른다. 발굴조사 시에도 유구층이 깊게 존재할 경우 지표면과의 높이 차가 커져 높은 벽면이 형성된다.

이러한 발굴 작업은 짧은 시간 내 이뤄지지 않는다. 유물이 발견되는 유물산포층, 집터 등 역사문화적 흔적을 지닌 유구면이 드러나기까지 퇴적 층위를 단계적으로 조사하고, 출토 유물의 연대 파악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노출된 벽면은 서서히 안정화되면서 쉽게 붕괴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토층이 균질하지 않거나, 장마 등으로 약해질 경우 붕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19년 7월 15일 전북 진안군에 소재한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갑작스런 토사 붕괴로 인해 작업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당시 현장에서는 전반적인 안전관리가 소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발굴조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토사 붕괴 방지를 위한 흙막이 지보공 등이 설치되지 않았고, 퍼낸 흙도 옮겨놓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173개 단체가 진행한 발굴 건수는 총 1834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모든 현장에 수 미터(m) 이상의 깊은 트렌치나 발굴사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보다 안전한 발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검토하고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우선 문화재 발굴 현장 책임자는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빈틈없는 안전관리 및 유적보호 조치에 나서야 한다. 퍼낸 흙이 빗물을 타고 인접지로 흐르지 않도록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특히 장마철에는 벽면 붕괴, 경사면 유실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시로 점검에 나서야 한다.

또한 중장비는 토압에 영향을 주므로, 트렌치 작업 또는 트렌치 인근 주정차 시 주의해야 한다. 중장비 운행에 따른 진동을 고려할 때 궤도형 보다 차륜형 장비를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벽면이 깊은 경우 중간에 사다리를 설치해 대피 통로를 마련하고, 외부인 방문에 대비해 안전 통로를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끝으로 발굴 작업을 돕는 인부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필수다. 이들은 발굴 현장에서 조사원의 지시를 받아 퍼낸 흙을 통에 담아 나르거나 주변을 정비하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를 맡는다. 문제는 이런 작업자들 대부분이 안전사고에 취약한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라는 점이다. 그간 발생한 안전사고 사례를 살펴봐도 대부분의 피해가 이들에게 가장 집중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26일 발굴현장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수립‧발표했다. 여기에는 발굴허가 신청 시 보다 강화된 안전관리계획서를 제출하고, 조사요원에 대한 안전교육을 실시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을 계기로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이 중요시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는 문화재 발굴 작업. 이제는 유구의 보존 뿐 아니라 작업자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갈 때다.


※유구(遺構) : 과거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고분이나 주거지와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잔존물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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