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식 (주)롯데이네오스화학 안전환경팀장(ISO 45001 심사원)

최근 안전보건관계자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과 비교해 사업주의 역할과 의무를 한층 강화한 만큼 현장 안전보건관계자들이 체감하는 중압감은 상당하다.

그간 산업계의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처법이 제정된 배경 중 하나는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만 경영진이 안전에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중대재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된 법과 제도가 시행된 지금, 변화를 요구했던 많은 이들의 바람대로 중대재해는 줄어들고 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처법 시행일인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 달간 산재 사망사고는 35건, 사망자 수는 총 4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각각 17건, 10명 줄었다. 수치만 두고 보면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인 만큼 많은 기업들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안전관리에 사활을 걸었을 사정을 감안할 때 예방의 효과와 실효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 익숙한 방법과 관행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습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강력한 법과 높은 처벌 수위만이 사고 감소의 지름길인가?”라는 화두는 안전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필자도 평소 지녔던 의문이다. 석유‧화학공장에서 안전환경 업무를 맡아 수행해 오며 지속적인 고민과 검토 결과 스스로 찾아낸 해답은 우수한 안전관리 시스템, 강력한 법과 제도 외에도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안전문화(Safety Culture)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롯데이네오스화학은 초산, 초산비닐 등 정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지난 1989년 영국의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인 BP(British Petroleum)사와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공장 설립 단계부터 글로벌 수준의 강화된 안전관리 기준과 시스템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석유‧화학공장의 안전관리는 시스템, 설비, 사람 등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시스템‧설비 분야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상당한 이점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진 안전관리시스템이 도입‧적용돼 있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까지 들여온 것은 아니다. 우리 사업장에서 “우수한 시스템이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판단 하에 사업장 작업자 스스로 현장의 위험을 인지‧평가‧통제하며 상호 공유하는 성숙한 안전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오랜 시간 남다른 공을 들인 이유다.

실제 롯데이네오스화학은 대표이사부터 신입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임직원이 자필로 서명하는 ‘안전준수 서약식’, 실제 작업 부서가 위험성을 스스로 책임지는 ‘작업안전관찰제도’, 오로지 안전만을 생각하는 ‘안전강조주간’ 운영 등 임직원의 안전태도와 관행이 체질화 되어 가치관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최근 정부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위해 발간한 가이드북에서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강력한 법과 제도, 고도의 안전관리를 위한 시스템과 설비는 결국 사람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중처법이 요구하는 사항은 철저히 준수하되 성숙한 안전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데 모두가 매진해야 한다. 특히 경영진의 역할도 중요하다. 실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비난이나 질책보다 그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 함께 깊이 고민하며, 끝까지 답을 쫓아 위험요소를 뿌리 뽑겠다는 태도와 관행을 사업장 전반에 전파‧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고,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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