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은 단순히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아니다. 경영책임자와 법인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산재예방 의무 주체로서 선제적으로 안전보건에 투자하도록 하자는 게 입법 취지다.

국민들이 그토록 중처법 제정을 갈망했던 이유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 위험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능력이 있는 큰 규모의 원청기업이 위험에 대한 통제권도 없고 능력도 부족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중처법을 통해 많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는 바다.

하지만 원안에서 후퇴해 제정된 중처법 시행령을 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경영책임자의 모호한 정의와 발주자 책임이 삭제되고 처벌수위 및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대폭 낮아졌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는 등 원안의 입법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청이 강력한 지배력 행사
중처법은 산안법과 달리 안전보건기준을 확립하거나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을 규정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중처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조항들 가운데 어떤 조항이 먼저 배경이 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처법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되어 각각의 의무와 처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적용범위 등을 제외한 의무와 처벌 등은 중대산업재해에서 유사하게 가져오거나 준용하고 있으며, 중대산업재해는 그 배경을 산업안전보건법에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산안법 위반에 따른 처벌의 한계가 중처법이 제정되게 된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산안법의 형량은 중처법을 반대했던 경영계의 주장처럼 세계 최고 수준이나 실제 법원의 처벌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매우 낮다. 최근 3년(2018~2020년)간 산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처분결과와 처벌수준을 살펴보면 실형은 4.5%이고 평균 징역기간은 14개월에 그친다. 벌금은 개인이 442만원, 법인은 513만원에 불과하다. 솜방망이 처벌의 전형이다.

중처법은 포괄적인 의무를 제시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세부적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규정된다. 안전보건규제 중 어떤 내용이 자신의 사업장에 적용되는지는 산업안전의무의 제1주체인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비용과 노력을 들여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령을 결정해 준수하는 방식이며 정부가 일일이 정해주지 않는다. 기업 스스로 비용과 노력을 통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대기업의 안전보건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엄벌주의를 채택하지 않고도 산재예방 선진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과 한국은 기업문화에서 차이점이 있다. 경영책임자와 원청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한국의 기업구조 특수성이다. 따라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명확히 하는 것이 산재감소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엄벌주의로 산업재해를 감소할 수 없다는 것은 한국 기업구조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주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아갈 길
중처법이 시행되었으나 기업의 안전보건 태만 경영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다. 토사 붕괴사고, 추락사고, 폭발사고 등으로 죽거나 다쳤으며 유해 화학물질에 수십 명의 노동자가 급성중독되기도 했다. 모두 중처법상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며 수사 대상이다.

고용노동부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몇몇 로펌에서는 공포를 조장하며 노동자의 죽음을 담보로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은 검증도 없이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중처법은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죽고 다치고 병든 뒤에야 만들어진 법이다. 이를 뒤흔들려는 몇몇 기업, 로펌, 언론, 사용자단체는 노동자의 죽음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처법의 본격적 시행에 맞추어 기업은 법적 대응과 책임회피에 힘을 쏟기보다는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여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중처법의 엄정한 집행과 함께 법 제정 취지에 맞는 효과적인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산재감소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중처법과 관련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교육, 홍보 등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사업에 집중할 것이다. 또한, 중처법의 제정활동을 되짚어보고 후퇴한 중처법의 실효성을 되살리기 위해 경영책임자 정의를 바로 잡고,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법 개정 활동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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