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읽는 안전

이미지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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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서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 체계가 아주 중요하다. 동물은 위험에 처하면 우선 도망갈 수 있지만, 식물은 도망갈 수 없다. 그래서 나무는 동물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다. 나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향기이다. 인간의 땀에 함유된 페로몬(pheromone)이 어떤 상대를 고를지, 누구랑 같이 후손을 만들지를 결정하듯이, 나무도 향기를 통해 자신의 생존을 가늠한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기린은 콩과 늘푸른큰키나무 우산아카시아나무를 먹는다. 그런데 우산아카시아나무를 비롯해서 아카시아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카시아’와 다른 나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카시아는 현재 ‘아까시나무’를 의미한다. 아까시나무는 미국 동남부 원산이고, 우산아카시아나무는 아프리카 원산이다. 그래서 두 나무는 각각 학명도 다르다.

나무의 모습이 우산처럼 생긴 우산아카시아나무는 자신의 새순을 먹는 대식가 기린을 물리치기 위해 몇 분 안에 유독 물질을 잎으로 보낸다. 기린은 우산아카시아나무가 보낸 유독 물질 탓에 맛있는 잎을 먹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그런데 기린은 주변의 나무로 가지 않고 100m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나무까지 가서 잎을 먹는다. 주변의 나무들도 우산아카시아나무가 보낸 소식을 접한 후 각자 방어물질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기린도 이 같은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옆에 있는 나무에게 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것이다. 주변의 나무들이 우산아카시아나무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람 덕분이다. 만약 우산아카시아나무가 보내는 유독 물질이 바람의 역방향으로 가면 옆의 나무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우산아카시아나무가 만든 유독 물질도 바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바람의 역할은 아주 많지만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나무는 바람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조건에서 바람의 방향에 맞게 경험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바람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뭇과 늘푸른큰키나무 소나무와 은행나뭇과 갈잎큰키나무 은행나무이다. 두 나무의 공통점은 바람으로 수정한다는 것이다.

소위 풍매(風媒)로 이루어지는 소나무와 은행나무의 수정 방식은 그렇지 않은 나무에 비해 암꽃과 수꽃의 모양이 다르다. 그런데 소나무와 은행나무는 모두 풍매로 수정하지만 소나무는 암수한그루인 반면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이다. 따라서 소나무는 한 그루에 암수의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암그루와 수 그루에 각각 암꽃과 수꽃이 핀다.

우산아카시아나무의 생존전략은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소통(疏通)은 산업안전 분야에서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누구든 생존을 위해서는 소통에 충실해야 한다. 소통의 기본은 글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림이다. 닫힌 상태에서는 소리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소통상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다. 소통의 대상은 우선 자신이어야 한다. 자신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대방과도 불가능하다.

우산아카시아나무가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자신과의 소통이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역할 분담이다. 나무의 열매는 철저한 역할 분담 덕분에 탄생한다. 어느 하나라도 자신의 역할에 소홀하면 결과(結果)를 정상적으로 얻을 수 없다.

일정한 틈도 소통에서 아주 중요하다. 나무는 그 자체로 소통의 구조를 갖고 있다. 나무는 줄기와 가지, 가지와 가지, 잎과 잎, 꽃과 꽃, 열매와 열매 간에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자신이든 상대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나무와 나무가 붙은 연리지는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소통 부재의 장면이지만 인간은 그러한 모습을 사랑이라 부른다. 인간이 나무의 고통을 사랑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한 존재의 아픔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태도가 아니다. 상대방의 고통이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나의 고통일 때, 상대방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일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소통 방식은 가장 효율적인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소통과 연대의식은 산업안전에도 매우 중요하다. 안전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연대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무는 그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나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 대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극찬한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현장에는 ‘보여주기 식’의 안전 캠페인을 비롯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캠페인 없이 자연스럽게 안전을 구축하려면 나무와 같은 ‘위기(爲己)’ 정신이 절실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삶이 ‘위기’ 정신이다. 위기 정신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방심하면 ‘탓’하는 습관이 생긴다. 소통과 연대의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탓’ 문화이다. 그러나 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탓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한다. 나무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탓하는 문화가 무서운 까닭은 그 순간 소통과 연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탓’ 문화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는 결국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문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무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잎, 꽃, 열매 등을 만들 듯이, 해가 뜨고 지듯, 달이 뜨고 지듯, 성실하게 살아야만 우리 스스로 안전한 삶을 만들 수 있다.

<글.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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