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오늘날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입안과 집행에 있어 근간이 되는 것이 지난 1972년에 제출된 로벤스 보고서의 제언이다. 로벤스 보고서가 나온 이래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보고서는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으며, 현재도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의 산업안전보건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벤스 보고서는 로벤스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제출한 것이다. 당시 로벤스 위원회는 안전보건에 관한 법 정비의 바람직한 모습,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와 법규제 간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집행의 바람직한 모습, 안전보건 대상영역의 확대 등 요컨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안전보건을 향한 비전 수립 등에 대한 자문을 요청 받았다. 이에 위원회는 2년간의 조사활동을 거쳐 안전보건법규와 그 집행에 관련한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원회는 법규가 너무 많고 규제 의존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 내 안전보건법규는 이미 9개의 법령군(群)과 그것에 부속된 약 500개 되는 상세한 규칙이 존재했다. 대부분 단편적이고, 규칙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위원회는 이처럼 지나치게 방대한 안전보건법규가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을 생각할 때 외부기관에 의해 강요된 세부적인 법기준칙에 대응하는 문제로 여기도록 길들여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당시 안전보건법규는 근로자 참여의 배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는데, 근로자 참여의 결여는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한 공장법의 유산이었다. 이에 따라 안전을 향한 노력 측면에서 근로자의 참여는 주로 사업주에 의해 강제되는 규율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이에 위원회는 종래의 제도가 국가규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개인의 책임, 자율성 및 자발적 노력은 경시되고 있어, 이러한 불균형이 시정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정부시책의 역할 및 중점은 일상적 사건에 대한 상세한 규정 수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자신에 의한 자율적인 안전보건조직과 안전보건활동에 영향을 주는 구조 만들기에 두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둘째, 위원회는 많은 법규가 본질적으로 불비(不備)하다고 평가했다. 안전보건법규의 대부분이 본질적으로 불만족스럽고 그 구성이 조악하다고 봤다. 특히 잇따라 발생하는 사고에 그때그때 대응하다 보니, 의지가 매우 강한 수범자조차도 단념하게 할 정도로 안전보건법규가 너무 세부적이고 복잡하게 되어 버렸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위원회는 이들 법규가 대체로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해 불가능한 표현과 스타일로 쓰여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로 인해 법전문가가 아닌 사업장의 라인관리자, 현장감독자, 작업자 등을 비롯해 감독기관의 직원들조차도 안전보건법규 모두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위원회는 이들 법규가 기계의 안전장치, 채광, 환기 등의 물리적 환경 방호에 중점을 두고 있고, 작업자의 태도, 능력, 행동과 작업자들이 일하는 장(場)으로서의 조직시스템의 효율성은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고 봤다. 또한 의회와 행정기관도 이 방대하고 상세한 법전을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여 최신의 상태로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위원회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문제는 안전보건법규의 만성병이며, 이들 안전보건법규가 현대의 기술‧지식의 진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위원회는 행정관할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의 역사적 경위에서 영국 내 산업안전보건행정 관할은 많은 기관으로 분할돼 있었다. 위원회는 이들 관할권의 경계선 탓에 산업안전보건을 확보하는 명료하고 종합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는 복수의 감독기관에 의한 다수의 안전보건법규에 의해 지도감독을 받는 사업장이 있는가 하면, 전체적으로는 노동인구 전체를 전혀 커버하고 있지 못하다(즉, 안전보건법규에 의한 보호가 적용 제외되어 있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한 위원회는 감독기관 레벨에서 볼 때 관할이 복잡하고 착종(錯綜)되어 비효율적인 행정이 되어 있으며, 불명확과 혼란을 초래하는 상태로 중복되어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러한 입법과 행정의 세분화가 결과적으로 여러 법규정을 조화시키고 협조하며 최신화하는 일을 극도로 곤란하게 하고, 국가 차원의 산업안전보건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관계기관 협의 등에 다대한 시간을 요하게 하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상기와 같은 결함은 기존 시스템의 부분적 개선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전면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보고서에 1)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의 바람직한 모습, 2)산업 레벨(단체)의 활동, 3)신규법령의 틀, 4)신규법령의 형태와 내용, 5)신규법률의 적용과 범위 등 광범위한 제언의 내용을 담았다.

이 중 핵심적인 제언 내용으로는 1)일원화된 산업안전보건 행정집행체제의 확립, 2)법령 구성의 명확화와 체계화, 3)자율기준의 활용과 자율안전관리의 촉진과 전개 등을 꼽을 수 있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자율안전보건관리의 중요한 수단인 점을 고려할 때, 로벤스 보고서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국제적으로 메가트렌드가 되는 데 있어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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