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에 흔들림 없는 중장기 방재대책 필요

지난 겨울 우리나라는 유달리 매서운 추위를 실감해야 했다. 강원 동해안지역을 중심으로 100년만의 폭설이 쏟아지면서 주민들이 고립되는 등 큰 피해를 입은 것. 타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연일 쏟아지는 기록적인 폭설에 교통이 마비되고 인명피해가 속출했었다.

날씨가 풀리면 끝나겠지 했던 이 악몽은 여름이 되자 더욱 참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7월 중순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의 발표가 무색하게 8월까지 빗줄기가 계속됐다. 연이은 폭우에 도심은 물에 잠겼고, 산은 무너져 내렸다. 분명 예전과 다른 대한민국의 날씨다. 점점 심해지고 있는 기상이변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살펴봤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기상청은 지난달 17일 장마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는 곧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됨을 의미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햇빛은 들지 않았다. 빗줄기는 계속됐고, 급기야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동두천 679.5mm, 서울 595.0mm, 춘천 555.5mm, 문산 494.0mm 등 전국적으로 500mm 안팎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특히 지난달 27일 서울에 내린 301.5㎜의 장대비는 7월 하루 강수량으로 1907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최고기록이었다. 이외 타 지역도 시간당 강수량 등 각종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예상을 넘는 기상이변에 방재기능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결국 도심 침수, 산사태 등 각종 피해가 잇따랐다.

이처럼 장마 종료 후 더 많은 비가 온 경우는 1973년에서 2010년 사이 14번이 있었다. 그중 11번(79%)이 90년대 이후 나타났다. 갈수록 기상이변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기상자료를 보면 그 심각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99년간(1912~2010년) 한반도 기온은 섭씨 1.8도 올랐다. 특히 200년대 한반도는 관측기록상 기온이 가장 높았다. 또 191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해 보면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7일 짧아졌다. 연중 가장 많은 비가 오는 달도 점점 7월에서 8월로 바뀌고 있다. 사실상 ‘기상이변’이 ‘이변’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상이변, 원인은 무엇?

여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에서 유입된 덥고 습한 공기가 북반구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부딪히면서 비가 내리게 된다.

예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7월초에서 중순경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후 물러갔는데, 90년대 후반 들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기간이 지나도 계속 한반도에 머물고 있는 것. 게다가 이 와중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남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들어오고, 이것이 또 대륙의 차가운 기단과 만나 거대한 물풍선을 한반도에 뿌리고 있다.

이같은 기상이변의 배경에는 이상해류현상인 라니냐(동태평양에서 일어나는 저수온 현상)가 있다. 라니냐가 북태평양고기압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밀어 내고 있는 것.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익히 알려져 있듯 온실가스 과소비로 인한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가 이상해류현상을 불러왔고, 결국 이것이 대기를 불안정하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
지구온난화는 이렇게 간접적 뿐만아니라 직접적으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상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공기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수증기는 7% 증가한다”면서 “이는 우리나라의 온도가 올라가면 비의 원인이 되는 구름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기에 구름이 비가 되면서 발생하는 잠열이 수증기 포화량을 더욱 높여 단기간에 많은 비를 뿌리는 국지성 집중호우의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즉 지구온난화로 인해 비구름이 커지고 이것이 비가 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수증기를 흡수하게 되는데, 잦은 집중호우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기상, 멈춰버린 방재대책

우리나라 정치·경제의 심장부인 서울의 경우도 1990년대 후반까지 상습침수지역이 많았다. 망원동과 풍납동 등이 그 대표지역. 하지만 지속적인 서울의 치수 및 방재대책에 힘입어 점차 서울에서 침수지역은 자취를 감춰갔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인 최근 들어 다시금 침수의 악몽이 서울을 휘감고 있다. 이번 강남 및 광화문 일대 침수에서 보듯 서울의 도심 치수시설이 달라진 한반도의 기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재전문가 등에 따르면 서울의 하수도시설은 1983년 10년 설계 빈도로 시간당 75㎜ 이내의 비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참고로 10년 설계 빈도란 10년에 한 번 올 만한 큰 비에 대비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 연휴 폭우를 겪은 뒤 서울시는 이 기준으로 폭우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기준을 시간당 95㎜(30년 설계 빈도)로 상향했다. 하지만 기준만 올렸을 뿐 현재 서울의 하수관은 대부분 시간당 71~75㎜의 비를 처리하는 규모다.

2014년까지 중구 무교동 등 26곳에 새 기준에 맞는 총길이 82.9㎞의 하수관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까지 공사가 이뤄진 구간은 5㎞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인 서울이 이 정도니 다른 곳의 치수·방재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예측을 뛰어넘는 기상이변에 맞게 도심의 치수·방재 대책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 방재전문가는 “강수량이 많아져 과거에는 안전했던 치수시설도 더 이상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면서 “대도시의 경우 배수관 규모를 지금의 3~5배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정부적 대응태세 마련 ‘시급’

그동안 우리나라가 기상이변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 관련 워크숍 등을 수시로 개최하는 한편 기후변화감시소를 추가로 신설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또 방재 관련 정부기관과 각 지자체들도 치수시설을 확충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범국가적인 역량이 집중되지 못하면서 이들 노력은 예측을 불허하는 기상이변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 최근 재난사전예방 및 사후관리를 위한 ‘재난관리 개선 민ㆍ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물론 여기에는 금번 물난리가 큰 계기가 됐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대비해 방재기준을 재정립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발족한 TF에는 육동한 총리실 국무차장를 비롯해 민간전문가 5명과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소방방재청, 산림청, 서울시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12일, 첫 회의를 가진 TF는 최근 집중호우 피해를 계기로 기상이변과 대도시의 재난 취약 요인 등에 대해 범정부적 대응이 시급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에 따라 향후 도시계획 수립 시 재해평가 강화 등 도시 방재기능을 개선ㆍ보완하고 산사태ㆍ급경사지ㆍ절개지 등 위험지역을 일제조사 또는 전면 보강하는 방안 등을 추진키로 했다. 또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재난대응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이를 위한 재원확보 및 관리방안 마련 등에 대해서도 적극 논의해나가기로 했다.

육동한 국무차장은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의 일상화로 종래의 시스템을 한계에 달하면서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졌다”면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재난관리체계를 마련해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방재선진국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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