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당시 사고는 불법 재하도급 계약 비위 등 건설현장에서의 구조적 문제를 비롯해 우리 일터 안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부끄러운 참사였다.

사람이 살아갈 안식처를 새롭게 짓기 위한 그곳에서 안전보다는 비용이, 세심한 관리‧감독보다 방관이 앞서다 무고한 시민 9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특히 국민들은 여느 사고보다 이날의 참사에 개탄을 금치 못했는데, 불과 수개월 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안전한 사회가 곧 실현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참사가 터진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피해자에게 남겨진 고통과 상처 상당수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과실책임자를 가리는 원‧하청간 법적공방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원청에 대한 서울시의 ‘8개월 영업 정지’ 행정 처분도 법원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효력을 멈춘 상태다. 다만 불법 재하도급 계약 비위와 관련해 지난 4월 7일 1심 재판에서 첫 실형 선고(징역 3년 6개월‧추징금 2억1000만 원)가 나왔다.

사고 이후의 상황도 심각했다. 심지어 사후약방문식 대응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해 벽두부터 같은 지역 같은 시공사의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발생한 외벽 붕괴사고가 단적인 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광주시가 관내 건설공사 현장 140곳을 대상으로 합동점검을 실시한 결과를 살펴보면 더욱 참담하다. 안전을 담보할 핵심 분야인 안전관리계획과 품질관리(시험), 감리 등에서 부적정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우리 일터 안전 수준이 개선될 수 있는 희망의 단초라도 보인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3월말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올해 1분기 산재 사망자수는 586명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2명(2.1%) 늘었다. 사고사망자는 241명, 질병사망자는 345명으로 각각 3명(1.3%), 9명(2.7%) 증가했다. 우리나라 일터 안전 수준이 전반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법의 원활한 현장 안착을 위해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해 왔고, 주요 기업에서도 현장 안전에 사활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우리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려 고착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11일까지 열리는 국제노동기구(ILO) 제110차 총회에 기대가 모아진다. ILO는 이번 총회에서 산업안전보건 관련 기술협약을 기본협약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두고 최종 결론을 내린다.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을 노동기본권에 포함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채택된 기본권선언을 개정하는 것이다. ILO기본협약은 전 세계 노사가 지켜야 할 보편적 ‘국제 규범’으로 여겨진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7일 총회에 직접 참석해 ILO의 방침에 환영의 뜻을 전달했다. 특히 고질적인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여전히 답보상태인 우리 일터 안전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 모두의 적극적 참여와 실천이다.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 작업에 임하는 노동자를 비롯해 일터를 구성하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안전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 역시 노동의 기본이 되는 안전의 가치가 일터에서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명심하자. 이제 안전은 전 세계가 원하는 시대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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