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조치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법 제4조 제1호, 영 제4조). 중처법상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내용과 범위 모두 매우 불명확하지만, 국제적으로 메가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Management System(이하 OSHMS)’의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처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와 OSHMS에 관한 국제규격인 ISO 45001은 어떤 관계라고 보아야 할까.

중처법과 ISO 45001의 관계는 교집합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낼 수 있다. 즉, 둘은 교집합 부분도 있지만 각각 차집합 부분도 갖고 있다. 중처법에는 ISO 45001에 규정돼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일부 규정돼 있고(예: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대규모 조직 본사의 안전보건 전담조직 구축), ISO 45001에도 중처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사항이 다수 규정돼 있다. 그런데 중처법과 ISO 45001의 교집합 부분, 즉 공통적인 사항도 구체적으로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간의 차이에 대해 주요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ISO 45001은 안전보건에 대한 역할과 책임의 명확한 설정을 강조하고 있으나, 중처법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ISO 45001에서는 안전보건의 이행 책임이 기본적으로 현업부서(Line management responsibility)에 있고 안전보건부서는 현업부서의 안전보건을 촉진·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작업자를 위시한 모든 구성원과 부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중처법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ISO 45001에서는 ‘프로세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중처법에서는 ‘업무절차, 절차, 매뉴얼, 기준과 절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ISO 45001은 ‘프로세스’와 ‘절차’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프로세스는 절차뿐만 아니라 역량 있는 인력, 적절한 기계·설비, 안전보건프로그램 등을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프로세스’는 ‘절차’가 있어도 사람, 기계·설비 등이 적합하지 않으면 절차대로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의도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처법이 ISO 45001의 ‘프로세스‘와는 다르게 ‘절차’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KOSHA-MS의 잘못된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KOSHA-MS는 ISO 45001을 벤치마킹하였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여러 부분에서 ISO 45001을 엉성하게 반영하고 있다.

중처법에서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영 제4조 제1호). 목표는 경영방침을 토대로 설정되어야 하므로 경영방침이 먼저 규정돼야 함에도 목표가 먼저 규정된 것은 문제가 있다. 이에 반해, ISO 45001에서는 안전보건방침을 먼저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안전보건목표 및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수립까지를 규정하고 있다.

중처법에서는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전담조직을 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영 제4조 제2호), ISO 45001에서는 이러한 류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중처법은 위험성 평가 중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 마련과 업무절차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의 확인·개선 점검(반기 1회 이상) 및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영 제4조 제3호). 위험성 평가는 유해위험요인 확인, 개선 외에도 위험성 추정(estimation)과 위험성 결정(evaluation)을 포함하는 것인데, 중처법은 후자에 대해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반면, ISO 45001은 위험원의 파악, 위험성의 평가(assessment), 위험성 감소 등 위험성 평가에 관한 모든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처법은 경영책임자 개인을 안전보건조치의 유일한 의무주체로 설정하고 있지만, ISO 45001은 조직, 즉 최고경영자를 비롯하여 조직 내의 관련된 모든 자의 의무, 참여 및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중처법은 절차(서) 또는 매뉴얼, 점검, 점검결과에 따른 필요한 조치 등 외형적인 것을 중심으로 단편적이고 체계성 없이 규정하고 있는 반면에, ISO 45001은 절차(서)보다 넓은 의미의 프로세스, 역량, 실질적 효과(예: 알게 해야 한다)에 초점을 맞춰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중처법은 도급인과 수급인 중 누가 의무주체인지가 불명확하고 도급인의 의무범위 또한 불확실한 상태이지만, ISO 45001은 도급인과 수급인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각 의무주체의 위상과 역할에 맞는 요구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처법에는 안전원리 면에서 ISO 45001과 괴리가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이는 중처법이 안전원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다분히 ‘처벌’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반면, ISO 45001은 자율안전보건관리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위상하에서 ‘예방’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처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 관한 규정에 국제기준에 맞지 않은 내용이 다수 포함된 것은 중처법이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엄벌을 염두에 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안전원리의 실현과 엄벌. 어느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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