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유교문화길 하회마을길 병산서원 복례문(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유교문화길 하회마을길 병산서원 복례문(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의지력은 안전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다. 모든 생명체는 의지력을 갖고 있지만, 의지력의 정도에 따라 목표의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현재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유산은 인류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강한 의지는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강한 의지 없이는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무한한 잠재 능력을 갖고 있지만, 모두 그 잠재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각각 의지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지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선각자들이 언급했지만,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자하(子夏)가 스승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해석한 다음의 구절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배우길 넓게 하며, 뜻을 돈독하게 하며, 묻길 절실하게 하며, 생각하길 가까이에서 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인 자미화(紫微花; 紫薇花)의 ‘자미’는 북극성인 자미성(紫微星)을 의미한다. 중국 고대 천문학자들은 자미성이 자미원(紫微垣)을 지난다고 생각했다. 자미궁을 뜻하는 자미원은 곧 천제(天帝)가 사는 곳이다. 중국 수·당 시대 낙양의 자미성(紫微城)과 명·청 시대 북경의 자금성(紫禁城) 등은 모두 자미성(紫微星)에서 유래한 궁궐 이름이다. 중국 당나라 현종은 자신이 근무한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 불렀다. 현재 우리나라 궁궐에서 만날 수 있는 배롱나무도 기본적으로 중국의 예를 좇은 것이다.

종묘를 비롯한 서원의 사당 및 묘소 등 기념공간에서도 배롱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나무이다. 그 이유는 배롱나무의 꽃이 붉어서 변하지 않는 단심(丹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요즘 배롱나무 중에는 붉은 꽃 외에도 흰 꽃과 보라색도 있지만, 배롱나무 꽃의 기본은 붉은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800살의 천연기념물 제168호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도 동래정씨 시조의 묘소 앞에 살고 있다. 강원도 강릉 오죽헌,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 대구시 동구 신숭겸장군 유적지 등 전국의 기념공간에는 수백 살의 배롱나무가 살고 있다. 이 같은 예에 따라 조상의 묘소에서도 배롱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배롱나무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강한 의지력이다. 배롱나무의 꽃은 한 송이의 꽃이 100일간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차례로 피고 지면서 이루어내는 강한 의지력 덕분이다.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아름다운 이유는 작곡 자체도 위대하지만, 연주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배롱나무는 초봄에 매실나무가 꽃을 피우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삶에 집중한다. 그렇지 않으면 때에 맞춰 꽃을 피울 수 없다.

만약 배롱나무가 잠시라도 방심한다면 우리는 배롱나무의 아름다운 꽃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배롱나무는 결코 그 누굴 위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다. 배롱나무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꽃을 피운다. 배롱나무의 이러한 태도는 ‘위기(爲己)의 삶’이다. 나무의 ‘위기의 삶’은 안전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배롱나무가 100일간이나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도 오로지 꽃을 피우는 데 집중하는 ‘경(敬)’의 정신 때문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을 위해서 충실할 때 가능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을 한다면 산업안전을 결코 지킬 수 없다. 또한, 산업 현장의 안전도 강한 의지력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산업 현장은 늘 안전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안전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한다. 따라서 산업 현장의 책임자는 물론이지만, 구성원들의 안전에 대한 돈독한 마음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글.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