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나라 안전보건 분야에서 시스템의 일종인 안전보건관리시스템(OSHMS)을 시스템적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스템이란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상호작용하는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구성된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시스템은 지속성, 일관성, 통일성을 가진다. 일반적인 시스템에 공통적인 구성요소는 투입(input), 산출(output), 프로세스(process: 투입을 산출로 변환하는 상호 관련되거나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활동), 피드백(feedback) 등 4가지이다.

시스템은 이외에도 여러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시스템은 목표를 가진다. 시스템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이므로 목표는 그 시스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둘째, 시스템은 분할 가능하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의 경우, 여러 개의 간단하고 규모가 작은 시스템으로 분할할 수 있다. 이때 작은 시스템은 하위시스템으로 불리는데, 시스템은 여러 개의 하위시스템이 계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시스템은 통제되어야 한다. 시스템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그 기능이 쇠약해져 결국 그 기능이 정지하게 되지만, 시스템이 존속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피드백 등을 통한 통제가 필요하게 된다.

시스템적 접근이란 시스템 개념을 이용하여 주어진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과학적이고 문제 중심의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면서, 문제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인 접근이다.

직선적 사고(인과관계)가 아니라 상호 연관성을 보고, 정지된 스냅사진과 같은 단편이나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중요시한다. 즉, 시스템적 접근은 전체의 입장에서 부분을 이해하고 상호 관련성을 추구하는 접근으로서,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예컨대 소금(NaCI)은 나트륨과 염소의 화합물이지만, 이들을 분리하여 분석하면 거기에서는 소금의 특성을 확인할 수 없고, 원소의 조합과 실제 인간의 생명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전체는 부분의 합과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어 주는데, 이러한 사실이 시스템적 접근을 뒷받침해 준다. 시스템적 접근에서는 개별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면서 생기는 이러한 새로운(독특한) 속성으로서의 창발성 또는 개성도 불가결한 요소이다.

OSHMS 접근은 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발전된 이상의 시스템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OSHMS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커녕 이해를 그르칠 수 있다. OSHMS 이전에 시스템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OSHMS를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경영책임자 1인에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중한 책임을 물으면 OSHMS를 단기간에 쉽게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스템적 관점에 따르면,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구성원마다 책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든 계층과 부서의 구성원이 책임을 공유한다. 그 외에도 시스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OSHMS를 오독하여 발생하고 있는 잘못된 사례는 적지 않다.

OSHMS의 구축·운영을 강한 형사처벌(중대재해처벌법)을 배경으로 그 인프라를 조성하지 않은 채 강도를 높이면서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결국 피로감을 쌓이게 한다. 세게 밀수록 튕겨내는 반동도 크다는 시스템 사고 법칙을 간과하였다. 그저 강력하게 열심히 하면 중대재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만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행동이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는 상황이 호전된 것처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가 다시 나타나거나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속되거나 악화되는데도 엄벌과 같은 손쉬운 해결책을 채택하는 데 의존하고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익숙한 해결책만 고집하고 그 강도를 높이는 것은 비(非)시스템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OSHMS는 오랜 기간의 지난한 노력을 통해 저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OSHMS를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단기 처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해결책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진정한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자신의 짐을 스스로 짊어지는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시스템적 사고이다.

오늘의 해결책이 내일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문제를 시스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놓았을 뿐인 대책의 실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는 OSHMS를 시스템적 사고로 접근하지 못하면 OSHMS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동이 걸릴 때도 되었건만 기대난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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