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최근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령 개정을 예고하고 나섰다. 올해 초 법이 본격 시행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대응이다. 그간 경영계가 중처법으로 인해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개정을 촉구해온 것이 정부가 움직이게 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재 경영계는 중처법을 두고 산업재해 감소효과가 없다며, 법의 실효성을 운운하고 있다. 특히 불명확한 규정으로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등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처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법은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으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실제 법 시행 이후 중처법이 적용돼 검찰에 기소된 사건은 단 1건으로, 직업성 질병인 독성 간염 사태가 발생한 두성산업이 유일하다.

특히 중처법 시행 이후 발생한 대부분의 사고는 노동자의 부주의가 아닌 기업의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 미이행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동시에 과거 사망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유해·위험요인을 그대로 방치해 유사한 사고가 재발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정부는 현장 혼란을 초래하는 시행령 개정에 나설 것이 아니라 법이 현장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이 시행된 지 200여 일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령 개정 논의는 시기상조다. 실제 수사와 재판을 충분히 지켜보고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은 엄중한 법 집행과 더불어 기업의 산재예방활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법의 원활한 현장 정착을 위한 노‧사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할 때다.

한편 중처법은 제정과정에서 정부부처의 관료 중심적 사고와 경영계의 로비 때문에 후퇴했다. 경영계에서 불명확하고 모호하다고 주장한 조문들은 후퇴한 결과의 부작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처법 시행령 개정은 적절치 않지만, 만일 이뤄져야 한다면, 그 방향은 ‘완화’가 아닌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처법을 일터 전반에 안착시키고, 법이 의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크게 ▲경영책임자 정의 명확화(대표이사로 한정) ▲발주자 책임 명확화 ▲벌금의 하한선 설정(징벌적 벌금 도입) ▲현장훼손, 사실은폐 등 형사처벌규정 신설 ▲적용제외 사업 및 사업장 삭제(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양형절차 분리(국민양형위원제도 도입) ▲인과관계추정 규정 신설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시행령 개정 시 정부가 고려해야할 사항 등을 정리해 본 것이다.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봐선 안 돼
먼저 기업의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해선 안 된다.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경영책임자로 본다면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바지 임원’, ‘바지 경영책임자’가 난립할 것이다. 안전보건과 관련한 인력, 조직, 예산 등은 오로지 경영책임자만이 할 수 있다. 경영책임자의 처벌 회피만을 위한 경영계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해선 안 된다.

직업성 질병과 관련해 일부에서 지속 요청 중인 별도의 중증도 및 사망자 기준을 추가하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본다. 평균적인 업무상 질병은 6개월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중한 중증도를 지니고 있고, 질병재해 사망자 기준의 경우에도 모든 중대산업재해는 기본적으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산업재해에만 해당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도 그러하다. 특히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중독과 그에 준하는 질병으로 한정치 말아야 하며, 나아가 직업성 질병 범위에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등 직업관련성 질병까지 포함할 필요가 있다.

경영계 일부에선 ‘필요한’, ‘충실히’, ‘충실하게’ 등의 표현들이 모호하다고 주장하며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타 법률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대법원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쓰이는 이러한 표현이 법률을 해칠 만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있다.

◇작업중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필요
중처법 시행령 제4조제4호에 예산 편성 및 집행과 관련하여 2인 1조 작업 및 과로방지를 위한 적정인력 배치 등의 인력 및 예산 산정에 관한 내용도 들어갈 필요가 있다. 시행령 제4조제8호의 ‘작업중지’의 경우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아직 작업중지(특히 노동자의 작업중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작업중지 등의 절차를 수립할 시 ‘작업중지의 기준’을 반드시 포함하여 수립하고 주기적인 훈련을 통해 실제 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권을 노동자가 바로 발동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시행령 제4조제9호나목과 관련해 종사자의 1일 생산성 기준에 의하여 합리적인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안전보건을 위한 관리비용에 작업지휘자, 유도자, 다인 1조 작업 등 인력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비용 등을 산정하여 구의역 사고, 서부발전 사고 등 위험작업을 혼자 작업하다가 사망하는 중대재해를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안전보건 관계 법령,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중처법 시행령 제5조(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와 관련해 안전보건 관계법령은 ①입법취지 ②법의 목적 ③변화하는 산업구조(신기술, 신산업 등)를 고려할 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추가되는 법률의 경우엔 검토에 따라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근로기준법 내의 과로에 대한 조문 및 직장 내 괴롭힘 내용, 휴식·휴게시간 등 직간접적으로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까지 포괄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대산업재해가 빈발 법인의 경영책임자 안전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중대산업재해 2회 이상 발생한 경우 가중교육을 신설하는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공사금액 50억 미만 건설현장)과 나머지 사업장의 과태료 차등은 안전보건교육 수강 조문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므로 삭제할 필요가 있다.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제도 강화해 기업 경각심 제고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확인되는 1심 판결이 나올 경우 발생사실을 공표하여 공표제도의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때 공표내용에는 원청의 명칭, 재해조사 의견서 및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위반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특히 게시 기간을 반영구적으로 설정해 국민들이 안전관리 우수기업 및 불량기업 등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시 방법으로는 관보 또는 고용노동부, 공단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일간지, TV 등 대중매체를 활용해 기업들의 경각심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부는 중처법의 엄정한 집행과 함께 법 제정 취지에 맞는 효과적인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산재감소를 이뤄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특히 산업재해만큼은 노사가 기존 대립적 관계의 틀을 탈피하여, 굳건한 안전문화 정착을 목표로 상호 협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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