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이미지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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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만나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절대다수 나무들의 꽃은 열매를 맺으면 자신의 역할을 마감하고 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무는 동시에 꽃과 열매를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차나무는 꽃이 핀 자리에 맺은 열매가 다음 해에 다른 가지에서 꽃이 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다. 차나무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차나무의 학명[Camellia sinensis (L.) Kuntze]은 이 나무의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학명을 붙인 사람은 두 사람이다. 먼저 학명을 붙인 사람은 스웨덴의 식물학자이자 식물과 동물의 학명을 국제 표준으로 만든 린네(Carl von Linn’e; Carolus Linaeus, 1707-1778)이다.

린네가 국제 규격으로 만든 학명은 속명과 종소명 등 이명법(二名法)이고, 모든 학명은 라틴어로 표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학명의 ‘(L.)’은 린네를 의미한다. 린네는 스웨덴 발음이고, 라틴어 발음은 ‘리나이우스’이다. 이명법의 특징은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이고, 종소명의 첫 글자는 소문자라는 점이다. 이명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는 점이다. 차나무의 학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한 사람은 독일의 식물학자 쿤체(Kuntze, 1843-1876)이다. 쿤체는 1874년-1876년 동안 카리브해,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이집트 등을 여행하면서 식물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차나무 학명 중 속명인 ‘카멜리아(Camellia)’는 ‘동백나무’를 뜻한다. 린네가 붙인 동백나무 학명(Camellia japonica L.) 중 나무의 특성을 표기하는 속명에서 ‘카멜리아’를 확인할 수 있다.

차나무의 학명 중 종소명 시넨시스(sinensis)는 ‘중국’의 라틴어 표기이다. 종소명은 식물의 특성을 표기하는 곳이자 원산지를 표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차나무의 학명에는 원산지를 제외하면 나무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정보가 없다. 다만 차나무의 특성은 동백나무의 특성을 이해할 때만 알 수 있다.

차나무와 관련해서 차나뭇과 늘푸른큰키나무 동백나무의 중요한 특성은 뿌리이다. 차나무의 뿌리는 소나무처럼 직근(直根)이다. 주근(主根)으로 불리는 직근은 땅속으로 곧게 뻗는 것을 의미한다. 느티나무처럼 직근과 달리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 분포하면 천근(淺根)이다. 따라서 차나무는 동백나무처럼 직근성 나무이다. 직근성 나무의 특징은 옮겨심으면 쉽게 살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한번 뿌리를 곧게 내리면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차나무는 천근성 나무보다 힘들게 뿌리를 내리지만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면 안전한 삶을 꾸릴 수 있다. 아울러 차나무의 이 같은 뿌리 특성은 중국 명나라 허차서의 『다소(茶疏)·고본(考本)』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식 폐백 때 시집가는 딸에게 남편과 헤어지지 말고 잘 살라고 차 씨를 준 풍속을 낳았다. 차나무의 잎으로 만드는 차는 인간이 세상에서 창조한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한 그루 차나무에서 만든 차만큼 인류의 역사에 깊고 큰 영향을 준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원산지인 중국에는 차의 역사와 관련한 유적은 물론 유물, 그리고 풍부한 문헌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다. 특히 차는 삼황(三皇) 중 한 사람인 신농씨(神農氏)가 만든 이후 지금까지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이 마시고 있다. 차처럼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식품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차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차는 차나무라는 자연생태, 차를 생산하는 마을인 사회생태, 그리고 차와 관련한 기록인 인문생태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차는 자연과학에서 인문과학까지 충분한 식견을 갖지 않으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융합학문이기 때문이다.

차는 찻잎으로 만든 것만을 의미한다. 차는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분류 기준은 비발효와 발효이다. 비발효차는 녹차이며, 발효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백차(약발효), 황차(경발효), 청차(반발효), 홍차(강발효), 흑차(후발효)로 나눈다. 그런데 녹차를 비롯한 차는 차 종류마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게다가 차는 차의 종류에 따라 만드는 방법도 다를 뿐 아니라 차를 담는 그릇도 다르다. 열매와 꽃이 만나는 차나무의 특성은 차의 위대함을 탄생시킨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차나무는 왜 열매와 꽃을 동시에 만나는 삶을 선택했을까, 차나무의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인문학적 해석은 철저한 성찰이다.

한 존재의 가치 있는 삶은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1년 동안 계속 성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열매와 꽃의 만남은 차나무가 1년 내내 자신을 살피겠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차나무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후에도 다음 해 꽃이 핀 것을 본 다음에야 열매를 떨어뜨린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하나의 결실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차나무의 삶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차가 지금까지 인류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차나무의 잎에서 얻은 차는 신비 그 자체이다.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도 어려운 것이 차의 세계이다. 차마다 각각 다른 색·향·미의 세계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차나무는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유산을 남겼지만, 무엇보다도 차나무가 인류에게 준 선물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중요성이다.

인류가 성찰의 시간을 갖는 순간, 중국 수나라 문제(文帝)가 불치의 두통을 한 잔의 차로 치유했듯이, 지구상의 많은 어려움이 곧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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