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본격 시행된 지 벌써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고용노동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9월 15일까지 일터에서의 사고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480명) 대비 19명 줄어든 461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사고사망자 수는 다소 감소했으나, 아쉽게도 실제 중처법 적용 대상인 상시근로자 50인(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이상 사업장의 경우엔 오히려 11명(170명→181명) 늘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중처법의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을 볼 때 법 제정 초기 기대한 만큼의 뚜렷한 산재감소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처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재예방 패러다임을 처벌 등 규제보다는 기업들의 자율적 책임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영국 등 안전선진국에서는 처벌보다는 사전예방적 안전정책에 기초해 사망사고를 줄이고 있다. 정부는 처벌 위주의 법과‧제도만으로는 일터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감소시킬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자율적 안전관리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현재 중처법상 불명확한 내용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애로사항도 해소해야 한다. 그간 기업들은 중처법상 의무 등을 이행하기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개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 및 책임범위가 불명확하여 법을 이행하고 준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일각에선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보건 책임을 이행하는데 주력하기보다, 처벌 회피에만 골몰하며, 로펌들만 이익을 취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법률 규정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정되었더라면, 이러한 논란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처법은 16개의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 조항 수도 많지 않다. 그러나 경영책임자의 정의 및 의무와 관련된 조문 등은 혼란스럽고 법체계적으로도 정합성이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

또한 법률 자체의 모호성과 함께 법률의 시행령 위임근거도 부재함에 따라 시행령에 정해져야 할 많은 내용이 법적 구속력과 안전성이 없는 정부 해설서로 대체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제정된 시행령조차도 불명확한 측면이 있고, 정부 해설서의 일부 내용의 경우 법률 문언의 취지를 벗어난 자의적인 해석과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원론적인 설명에 그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문제제기를 통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중처법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며 법원의 판단을 무작정 기다려보라는 정부의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올 때 경영계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부차원에서 시행령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 개정 범위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법률의 위임 범위 내에서 시행령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지만, 시행령 개정의 범위를 너무 한정하여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 헌법 제75조에서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률 집행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시행령 규정에 조문화하여 규정할 필요가 있다.

중처법은 제정 과정에서부터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돼 법률적으로 많은 흠결을 가지고 있다. 중처법의 현장 작동성을 높이려면 근본적인 미비점 개선을 위한 입법보완이 시급하지만, 당장 현장의 혼란을 해소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시행령 개정부터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들이 중처법을 제대로 이행‧준수해 나갈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세부지침과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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