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이미지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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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뭇과 갈잎큰키나무 밤나무의 열매인 밤은 결실의 상징이다. 밤은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열매를 대표한다. 밤의 이러한 평가는 열매의 특징 때문이다. 밤나무 열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밤송이의 가시이다. 절대다수의 식물 열매에는 가시가 없다. 나무가 열매에 무시무시한 가시를 만든 까닭은 후손을 안전하게 남기기 위한 치밀한 전략 때문이다. 밤은 다른 식물의 열매가 씨방을 보호하는 육질을 가진 것과 달리 그 자체가 씨방이다. 그래서 밤나무는 씨방을 보호하는 가시를 만들었다. 밤은 그 자체로 씨방이라서 알맹이 전체가 단단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속이 꽉 찬 이미지를 준다.

밤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율(栗)은 나무 위에 밤송이가 달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율’ 자는 갑골문에 등장할 만큼 오랜 재배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밤송이는 한자로 율방(栗房), 밤송이의 가시는 한자로 율자(栗刺)이다. 밤송이의 색깔은 다갈색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갈색을 흔히 ‘밤색’이라 부른다. 이 같은 밤송이의 특징 때문에 생긴 한자가 바로 전율(戰栗;戰慄)이다. 전율은 두려워서 떠는 모습을 말한다.

밤송이의 가시는 다른 생명체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밤송이를 함부로 대하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논어(論語)』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주나라에서 밤나무로 신주(神主)를 만든 것도 가시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은 언제나 삼가야 하고, 조심스럽게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밤송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별하다. 제사 때 반드시 올리는 물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밤을 제사에 사용할까? 제사 때 밤을 이용하는 것도 밤의 특성과 관련 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종자에서 싹을 틔워 내면서 종자의 껍질을 밀고 올라오지만, 밤나무는 그 반대로 종자의 껍질이 뿌리가 내려가고 줄기가 올라오는 경계 부근에 아주 오랫동안 달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나무의 이러한 특징을 자신의 근본, 즉 선조를 잊지 않는 존재로 여겼다. 밤은 대추와 더불어 자식과 부귀를 상징한다. 혼례에 밤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가 차원에서 밤나무를 관리한 것도 종묘(宗廟)를 비롯한 각종 제사에서 밤의 수요가 많았을 뿐 아니라 신위를 만드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근본을 잃지 않는 밤나무의 삶은 인간의 삶에도 아주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초심을 잃은 채 성과를 지속한 사례는 아주 드물다. 밤나무가 알찬 성과를 거들 수 있는 것도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듯이, 사람도 삶 속에서 언제나 초심을 간직해야만 끝까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초심은 간절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초심을 잃는 이유는 간절한 마음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벌에게 꿀을 제공하는 밤나무의 꽃은 진한 향기로 유명하다. 밤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다.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게 수꽃이고, 암꽃은 수꽃의 꽃차례 바로 밑에 세 개씩 달리지만, 관찰하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 밤나무도 부모인 참나무를 닮아 목재 가치도 아주 높다. 밤나무는 서양에서 만든 포도주 통으로 쓰이고, 영국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건축 재료였다.

소나무의 학명을 붙인 지볼트(Siebold)와 주카리니(Zuccarini)가 공동으로 명명한 밤나무의 학명(Castanea crenata Siebold & Zucc.) 중 속명인 ‘카스타네아(Castanea)’는 ‘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스타나(castana)’에서 유래했다. 종소명인 ‘크레나타(crenata)’는 잎에 ‘톱니가 있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동방삭(東方朔)의 『신이경(神異經)·동북황경(東北荒經)』에서 밤나무에 대한 신화를 만날 수 있다.

"동북쪽의 어떤 나무는 높이가 40장이고 잎의 길이는 5척, 너비는 3척으로 ‘율(栗)’이라 부른다. 열매의 지름은 3척 2치인데 껍질은 붉고 속살은 황백색으로 맛이 달다. 이것을 많이 먹으면 사람의 기가 약하게 되고 고갈된다."

밤나무와 관련한 얘기 중 원효의 탄생은 유명하다. 원효가 바로 밤나무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관련 얘기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원효는 현재 경산시 압량 밤골 사라수(沙羅樹)에서 태어났다. 사라수에 얽힌 얘기는 다음과 같다.

"스님의 집안은 원래 이 골짜기의 서남쪽에 있었다.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골짜기에 있는 밤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산통을 느꼈으나 집으로 돌아 갈수가 없었다. 이에 남편이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안에서 출산했기에 이 나무를 사라수라 했다.

예부터 이런 얘기가 전한다. 절의 주지가 노비들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노비는 적다고 관청에 고소하니 관리가 괴상히 여기고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를 해보니 밤 한 알이 발우에 가득 차므로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밤골이라 했다. 원효스님이 출가한 뒤에는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초개사(初開寺)라고 했으며, 사라나무 아래에도 절을 짓고 사라사수(沙羅寺樹)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밤나무를 소나무와 대나무 및 대추나무처럼 곡물과 같은 의미의 율전(栗田)이라 불렀을 뿐 아니라 사사로이 밤나무 베는 자를 처벌했다. 밤나무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밤송이의 가시를 만들었지만, 인간은 가시를 제거한 후 밤을 먹는다. 그러나 밤송이의 가시는 밤을 생산하는데 필수이다. 인간이 밤송이의 가시가 지닌 의미를 잃어버리면 밤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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