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만큼 산업현장과 사회에서 안전이 주요 이슈로 부각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안전 규제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김용균씨의 사망사고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의 기폭제가 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규제가 강화되고 인식이 높아지면 재해가 감소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망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산업현장의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했지만, 사망사고는 연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올해 산재 사망자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사망사고는 9건 감소했으나, 사망자수는 되레 8명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발생 양상의 전형적인 모습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를 향한 압박과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종합국정감사에서 “중대재해가 줄지 않아 많은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대책으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존의 산재 사망감축이 ‘처벌과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기업의 ‘자율과 예방’에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이미 있는 법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율 안전이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지 우려도 크다. 하지만 안전관리에 대한 기업의 자율의지와 참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수준을 높이고 산재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정부는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기업이 스스로 산재 위험요인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고, 기업들은 근로자들이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또한 정책 기조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안전을 최우선 시 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것도 필수다. 이것이야 말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의 시선을 완전히 지우는 길이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안전 정책은 위기 극복과 추락의 변곡점에 서 있다. 그 성공 여부는 오롯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터에 얼마나 일찍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기초적인 토대가 되는 법과 제도를 잘 지키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 스스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고, 현장의 안전관리 역량을 키워나가는 이상적인 모습이 우리 일터에서 구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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