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발생한 초유의 정전사태 원인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전력거래소의 허위보고’와 ‘지식경제부의 무능한 위기대처능력’ 중 어느 것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는지에 의원들과 각 기관 사이 날선 공방이 오간 것.

각 기관들 입장에서야 원인 판명에 따라 책임 소재의 정도가 갈리니 사활을 걸고 변론을 함이 마땅하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국민들은 누가 문제였는지를 떠나 정부의 미흡한 대처방식 자체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국민들에게 불신을 초래했는지 사건을 되짚어보자. 지난 15일 오후 3시부터 전국적으로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국 162만 가구의 전기가 나갔고, 서울 도심 250여곳의 신호등이 작동을 멈춰 극심한 교통난이 일어났다. 심지어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에 갇힌 수많은 시민들은 극심한 공포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갑작스런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 전력 예비역이 안정수준인 400만kw 이하로 하락하여 95만kw의 자율절전과 89만kw의 직접부하제어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요 증가로 전력예비력이 400만kw를 넘지 않자 지역별 순환정전을 시행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겨울에 대비해 정비에 들어간 발전소가 많았는데, 사고 당일 예상보다 수요가 많이 몰렸다”고 해명했다.

참고로 ‘자율절전’은 한전과 미리 계약을 맺은 기업, 가정 등의 수용가가 자율적으로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이며, 직접부하제어는 한전이 미리 계약을 맺은 수용가의 전력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또 ‘지역별 순환정전’은 이 2가지 조치로 예비력 400만kw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사전 작성된 매뉴얼에 의해 지역별로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한전 및 정부의 해명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처방법에 분명 큰 문제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이를 산업현장에서 사고에 대처하는 유형에 대입해 하나하나 집어보자.

일반적으로 산업현장에선 사고 발생 시 크게 3단계로 접근을 한다. 먼저 정확한 사고발생 경위를 파악한다. 이후 사고발생 원인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사고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을 관리적인 요소, 인적인 요소, 설비적인 요소, 실행적 요소로 나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들 요소를 반영, 예방대책을 물적·인적·환경적 항목별로 철저히 수립한다.

이 단계별 조치를 보면 알 수 있듯 산업현장은 사고를 대함에 있어 책임소재 규명보단 동종 사고예방 차원에서의 개선대책수립을 최우선으로 접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에선 크게 6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기상청의 폭염 예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점(사전 위험경고 시그널 무시). 둘째 이상고온에 따른 예비전력률 및 전력수요예측 잘못 판단. 셋째 발전소 정비실시로 전력공급 공백상태 유발, 즉 정비계획수립 실패. 넷째 비상매뉴얼을 무시한 조기단전. 다섯째 사전 통보 없이 순환정전 결정 여섯째 문제발생시 보고체계 문제 등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을 볼 때 이번 사고의 원인은 총체적 국가위기관리능력 부재나 한계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자연현상으로 인한 피해는 어쩔 수 없다 하자. 허나 이에 대한 관련기관들의 허술한 대처와 허위보고는 피해를 키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력은 국가 인스트럭처의 기본으로써 산업과 국민들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비자들도 이번 사태를 에너지 소비생활에 있어 자성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안전은 사회적 과제이며,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너 나가 따로 없이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해결해야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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