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환(쌍용양회 동해공장 환경안전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웬만한 작은 실수는 묵인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이다. 그만큼 인간 자체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실수가 크거나 반복적일 때는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산업현장에서는 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한 번 실수쯤이야!”라며 실수를 가볍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뜻으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 질 때 있다’라는 귀절이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쉽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는 떨어진 원숭이는 부상을 당하거나 맹수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전관리와는 거리가 먼 적절하지 못한 속담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방귀가 잦으면 x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실수에 대한 경고성 문구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을 산업현장에 대입하면 “실수가 잦으면 사고를 낸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唐書(당서)에 보면 裵度(배도)라는 장수가 전쟁에서 패하여, 임금인 憲宗(헌종)에게 죽음을 간청했을 때, 헌종이 一勝一敗兵家常事(일승일패병가상사)라는 말로 그를 용서한 사례가 있다. 이는 오늘 날 한 번 실수를 묵인하는 용어의 유래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를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정립해놓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가깝게는 2011년 8월 대구육상선수권 대회를 예로 들어보자. 대회의 주역이라 할 정도로 메스컴의 중심에 있었던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조기 출발로 인해 실격되는 실수를 범하여, 대회 관계자는 물론 전 세계인들을 勞心焦思(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2010년 3월 벤쿠버 동계올림픽 때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의 경기에서도 실수가 승패를 갈랐다. 또 네델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의 생각치도 못 한 코스 이탈은 메달의 색깔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이 모두는 선수 자신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금전으로 산출할 수 없는 손실을 불러왔다.

그 밖에 경계근무를 하는 병사의 실수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행위로 이어 질 수 있고, 그들을 믿고 생활하는 국민들이 단잠을 이룰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또 법관의 실수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신분을 바꿔 놓으며, 대형 버스 운전자의 실수는 수 십명의 생명을 사상할 수 있다. 주방장의 실수는 음식점의 폐업과 식중독 등 대형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실수를 줄인다 함은 사고를 줄임이요, 나아가 사망 사고를 줄이는 초석이 된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목부는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를 산업현장에 대입해보면 추락사고를 겪은 회사에서는 재발을 막기 위해 난간대를 제대로 설치한다는 의미이다.

실수를 줄이려면 방심을 없애고, 해당 업무에 집중하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사람은 일상 중 감각이 저하되는 순간도 있을 수 있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의식 수준이 떨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는 고의적인 실수도 경계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떠미는 행위만 고의적 사고가 아니다. 뻔히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전시설을 철거하거나 생략, 방치하는 것도 고의적 사고다. 이는 곧 사고를 부르게 됨이 자명하다.

실수를 한다해서, 전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고는 예고가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또 어느 순간에는 누구든지 사고를 입을 수 있게 된다. 냇가의 징검다리 중 어느 돌다리 하나가 흔들린다 해서 모든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빠지는 사람이 속출하게 된다는 논리다.

오늘은 요행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내일도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안전은 인간생명 우선의 원칙에서 볼 때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며, 절대 단 한번 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고로 이젠 ‘한 번 실수 병가상사’라는 말은, 먼 얘기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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