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자율규제(self-regulation)에 대한 법적 개념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정부(행정)규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율규제는 규제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고 규제의 상대방인 피규제 사업자(단체)이고, 준수해야 할 기준(규제)을 이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법정책 수단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자율규제를 통해서 규제완화(또는 규제개혁)를 도모할 수는 있으나 자율규제 자체가 규제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규제완화의 대안으로서 자율규제를 논할 수는 있지만, 자율규제를 하는 것 자체가 반드시 규제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전의 정부규제는 그대로 두고 자율규제를 신규 또는 추가로 도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분야에서도 자율규제는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일찍이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1974년)을 위시한 많은 국가의 법제에 채택되어 있다. 기업(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를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specific) 법적 기준과 자율규제라고 하는 산업안전보건의 양대 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체적 기준이라 함은 난간·방호장치 설치기준, 작업계획서 작성방법 등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법령, 엄밀히는 사업장 안전보건관계법령상의 세세한 기준을 의미하고, 자율규제라 함은 구체적인 법적 기준을 상회하는 안전보건관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자율안전보건관리(축약하여 자율관리)’라고도 불린다. 구체적인 법적 기준은 명령·통제기준(command and control regulation)이라고도 하며, 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저기준(minimum standard)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법적 기준은 전통적으로 일률적(획일적)이며 일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개별 사업장의 구체적인 실정(상황)을 반영·고려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법규의 특성상 기술변화 등을 신속하게 반영하지 못하는(사후대응적) 한계도 가지고 있다. 즉, 구체적인 법적 기준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것만 잘 준수한다고 하여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이 충분히 확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율안전보건관리(자율관리)는 안전보건 영역에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이는 ‘자율’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업에서 구체적인 법적 기준과 관계없이 임의대로 하는 것, 즉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안전보건 분야에서의 자율관리(자율규제)는 그 등장배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구체적인 법적 기준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 기준의 준수를 대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지 상호대체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율관리(자율규제)라고 해서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관리(자율규제) 중 중요한 사항은 구체적인 법적 기준과 마찬가지로 그 이행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강제화되어 있다. 다만, 자율관리(자율규제)는 그 강제방식이 프레임(틀)만 강제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기업의 선택(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법적 기준의 강제방식과 다르다.

자율관리(자율규제) 중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것은 제2장 제1절의 안전보건관리체제, 제2장 제2절의 안전보건관리규정, 제36조의 위험성평가 등이며, 이 사항을 준수하지 않으면 직·간접적으로 벌칙(과태료) 부과가 수반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율관리(자율규제) 관련 규정의 취지는 사업장의 구체적인 실정을 토대로 구체적인 법적 기준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사항까지를 반영하여 안전보건관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까지 법령에서 세세하게 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법적 기준과는 달리, 자율관리(자율규제)는 세세한 방법·절차 등에 대해서는 기업의 자율(선택)에 맡기고 있다는 차이를 가진다.

이처럼 자율관리(자율규제)는 사업장 안전보건을 확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이의 형식적인 구축·운영이 아니라 ‘실질적인’ 구축·운영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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