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법 시행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일하길 소원했으나, 중대재해는 여전히 일터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간 경영계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법이 잘못되었다며 되돌리려고만 했고, 정부는 그런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됐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고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 현장 노동자, 중간 관리자만 처벌받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조직, 예산 등에 책임을 부여한 법률이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며 역행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영계는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처벌이 아닌 예방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영계가 내어놓은 예방 노력은 눈 씻고 보려야 볼 수 없고,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외침만 요란하다. 모순이다.

정부는 일관된 입장으로 법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 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현장정착을 위해 노사정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하다가 정권이 바뀌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었다.

특히, 작년 1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안전보건규제를 완화하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동자가 죽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전형적인 안전보건 개악 로드맵이다. 불확실성 해소라는 빌미로 안전보건 확보의무 축소를 시도하고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확행하겠다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연구용역을 받아들인 분명한 개악 시도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위험성평가 등이 일부 강화된 측면이 있으나 ▲작업중지 완화 ▲노동자 처벌 등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안전보건규제 완화 내용이 곳곳에 박혀있고, 제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재탕한 수준의 로드맵이다.

이번 로드맵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이 1,220개 조항으로 방대하고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어 현장 수용성이 낮고, 자발적인 예방 역량 형성 동기를 저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다. 자율적인 산재예방을 위해서는 더욱 방대하고 세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령과 관련해 조항을 개발하고 최신화하는 개선활동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제13조(기술의 제정 등)가 유명무실한 상태에서 가이드, 매뉴얼 등에 매몰된 것이 현재 산업안전보건법령의 현실이다.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의 문제점
고용부는 위험성평가 실시 기업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자료에 적시하여 검찰·법원에서 구형·양형 판단 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의무사항인 위험성평가를 마치 대단한 노력을 한 것처럼 포장하여 정부가 수사 봐주기로 솜방망이 처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먼저, 위험성평가 제도의 현장 실행력 제고를 위해서는 단순히 위험성평가를 기법으로 보기 이전에 제도로서 실행력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판단기준과 미이행에 대한 벌칙과 제재를 명료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자 참여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더욱 상세하게 설정해야 한다.

둘째, 전체 단계에서 노동자 참여를 확대시킬 경우 취지에 맞게 제도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단계에서의 참여를 입증하지 못하면 위험성평가 자체를 부적정, 미실시 등으로 판단할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TBM) 강화의 경우 실질적인 종사자의 의견청취 절차로 이어지고 인정될 수 있도록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 기록, 검토,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관리감독자, 안전보건관리담당자의 업무 권한 및 여건이 보장되고 제공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관리감독자 역할 강화는 단순히 가이드, 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다. 권한과 여건 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역할 강화는 권한 없는 책임성 강화에 불과하다.

정부는 위험성평가를 토대로 충분히 예방 노력을 한 기업에 대해서는 수사 시 반영하겠다는 것을 공언하였는데, 산재예방은 선택이 아닌 의무의 영역이며 충분한 예방 노력에 대한 입증을 정부가 해주는 것은 잘못하면 산재에 대한 수사 봐주기 우려가 있다.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의 문제점
정부는 민간 기술지도를 위험성평가 기반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개별 안전조치 미비점 지적 위주에서 위험성평가 컨설팅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는데, 현장의 위험성평가 컨설팅은 보고서 작성에 매몰되어 민간재해 예방기관이 보고서 작성을 대신해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에 집중하고 형식과 내용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자체적인 평가 진행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현행 위험성평가 인정제도를 개편하여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수준 확인 및 향상을 위한 인증제도를 신설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도 산업안전보건 인증제는 ‘ISO 45001, KOSHA-MS’ 등이 존재한다. 해당 인증제도 등의 경우 샘플링 한계, 심사원간 역량차, 업종별 평가기준 부재, 사후관리 부실 등으로 인하여 개선이 필요한 실정에서 새로운 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감경 및 면책을 위해 국민의힘에서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일부 법률개정안을 반영하기 위함이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건설·제조업 스마트 기술·장비 중점 지원을 의제로 설명하고 있으나 AI CCTV,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등 노동자의 통제와 감시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대책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스마트 안전보건기술의 경우 활용근거와 악용방지를 위한 법적 근거가 현재 없거나 빈약한 상태이다. 일부에서는 스마트 안전보건 기술과 관련하여 개인정보 보호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원칙이니 괜찮다고 주장하나, 개인정보처리자와 정보주체를 대등한 당사자로 전제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갖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술로 인한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권리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및 문화 확산 문제점
정부는 노동자가 안전보건의 주체로서 역할과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활동시간과 여건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권리와 역할이 부재한 채로 책임만 강화한다면 현장의 안전보건 활동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표준 안전보건관리규정의 경우 안전수칙에는 노동자의 보호구 착용 등만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 2인 1조 작업(복수인원 작업) 등을 포함하여 회사가 수립한 안전수칙 전반을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안전수칙 제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고, 그러한 과정을 노사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참여’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 중 하나는 ‘자신이 준수해야 할 안전수칙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안전보건 참여 확대를 위해 노동자의 작업중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범위·요건 등의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작업중지는 권장 사항이 아닌 권리이자 의무로서 법률적 의무사항이라는 배경에서 해석과 접근이 필요함에도 매뉴얼 수준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또한, 사전예방 성격의 작업중지 발동으로 인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문제를 제기할 경우 노동자가 대처할 방법을 정부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문제점
정부는 기관 간 협업, 거버넌스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기관 간의 협력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의사결정 구조에 있음을 유의하여 노동자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협의’ 과정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산업안전 거버넌스 정비방안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전직 관료나 법조인 출신으로 안전보건 기술지도와 컨설팅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안전보건 종합 컨설팅 기관의 육성 또한 향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정부 정책, 공공기관의 사업 등이 모두 로드맵에 종속되고 있으며 안전보건규제 완화가 우려되는 시점이다. 한국노총은 현 정부의 안전보건규제 완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재예방 분야에서 안전보건규제 완화 저지,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및 법·시행령 강화, 노동조합을 위한 교육·홍보·기술지원·혁신사업 등을 전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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