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며 규제에서 자율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로드맵은 기업 노사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안전의식 및 문화확산,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관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경영계는 정부가 그간의 처벌·감독을 통한 타율적 규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을 정책 방향으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그동안 사업주 책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겼던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의무 확립 등을 강조한 것도 의미가 있다.

노동계 등 일각에서 여전히 사업주 처벌·규제강화만을 외치며, 자기규율 정책방향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 로드맵에서 밝힌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 사례와 같이 촘촘한 법과 과도한 규제만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로드맵의 자기규율(self-regulation)이란 기존 산업안전규제의 필요성을 배제한 개념이 아니며,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규제완화의 개념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규율은 사업장 안전보건 확보에 있어 법적 기준 준수로 포괄하지 못하는 부분을 사업장 자발적으로 관리하라는 것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측면도 크다. 이처럼 자기규율 예방체계에 있어 자율의 의미는 법률의 준수를 전제로 노사가 협력하고 노력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까지 현장에 맞지 않는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안전보건 관계법령과 산재예방 효과 없이 처벌에만 얽매인 정부의 감독행정을 바로잡고, 사업장 스스로 서류 중심의 형식적인 법률 준수를 뛰어넘어 실질적인 안전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현장 혼란을 초래하는 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규정과 현실에 맞지 않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정비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며, 법적 기준을 포괄하지 못하는 자기규율 영역에 대해 기업이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에 있어 핵심사항인 위험성 평가 제도의 현장 안착을 위한 면밀한 제도설계와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자율성 부여가 필수적이라 여겨진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위험성평가의 실시)에서 말하는 위험성 평가의 경우 선진외국 및 국제기준과 달리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추가적인 위험성 감소 조치까지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세부 기준 제시없이 위험성평가 제도에 대한 벌칙 규정을 마련한다면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 및 적정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 정부는 로드맵에서 위험성 평가 전단계에 근로자의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위험성 평가 단계에 개별 근로자가 참여하여 활동하는 것은 경영계도 적극 권장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안전 선진국으로 언급된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위험성평가에 근로자 참여를 의견 청취, 협의 수준에서 권장하고 있을 뿐 강제하고 있지 않음을 유념하여야 한다. 산업현장의 특성상 근로자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며, 또 전문성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근로자의 참여보다는 전문가의 참여가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률적인 근로자 참여의 법적 강제보다는 기업의 특성과 업종과 공정의 특성 등을 반영하여 현장 상황에 맞게 사업장 자유롭게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위험성평가제도 강제화 추진 시 기업이 현장 특성에 맞게 위험성평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위험성평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모델을 개발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안전이 중요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정책의 나아갈 총론적 방향을 제시했다고 본다. 그러나 로드맵의 세부내용을 보면 여전히 형식적 규제나 손쉬운 처벌 위주의 감독행정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크다. 부디 정부 로드맵이 자기규율을 앞세운 명분에 그치지 않고, 실효적인 대책마련에 이를 수 있도록 정부는 산업현장에 걸맞은 안전인프라 구축과 전문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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