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시스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정과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국제규격인 ISO 45001의 상응하는 규정 간의 관계가 안전보건 이슈가 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ISO 45001을 참고하였다고는 하지만 규정내용에 있어 둘 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선 대표적으로 긴급상황에 관한 규정을 예로 들어 둘 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ISO 45001에서는 조문 8.2(긴급상황 대비·대응)에서 긴급상황에 대해 준비하고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세스’를 구축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조직이 실시해야 할 사항(7가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 긴급상황이라고 불리는 자연재해(태풍, 홍수, 지진 등)이다. 본 조문은 조직에 대하여 그와 같은 경우에도 피해가 경미하게 되도록 훈련 등의 대비를 해두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것에는 자연재해 외에는 인적 요인에 의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실화, 조작미스에 의한 폭발 등이다.

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제일의 우선과제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있으므로, 만일 재해에 이르는 긴급상황이 발발한 경우에는, 취업자가 적절한 행동,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평상시에 훈련을 해둘 필요가 있다. 긴급상황의 예로는, 중한 부상 또는 질병이 될 수 있는 사건, 화재 및 폭발, 유해물질·가스 누출, 자연재해, 악천후, 전력공급의 정지, 팬데믹, 전염병, 시민폭동, 테러리즘, 중요시설의 고장 등이 있다.

긴급상황에 대한 계획적인 대응은 과거의 사례 등을 통해 구축하면 된다. 그리고 계획적인 대응을 위한 교육훈련, 계획적인 대응 능력의 주기적인 테스트 및 훈련은 각각 주기적으로 실시될 것이 요구된다. 교육훈련 결과, 주기적인 테스트 및 훈련 결과, 발생한 긴급상황 등을 평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계획을 개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모든 취업자, 수급인, 방문객, 비상대응기관, 정부당국 및 필요한 경우 지역사회에 대하여 긴급상황에 관련된 정보를 적절하게 전달할 것이 요구된다. 또 관련되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수요 및 능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규제당국, 소방 등 웹사이트에 게재된 발생사건 등을 참고로 하거나, 긴급상황 발생 시의 연락루트를 파악해 두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긴급상황 대응계획 등 관련정보는 수급인, 방문객, 비상대응기관, 정부당국 및 지역사회에 전달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긴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은 문서화된 정보로서 유지하고 기록을 보유하는 것이 요구된다. 긴급상황에 대비하는 계획은 통상적인 영업시간 안팎에서 발생하는, 자연적, 기술적 및 인위적 사건을 포함할 수 있다.

긴급상황 대비·대응과 관련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제4조 제8호)에서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 중대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호조치, 추가 피해방지를 위한 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이 규정은 위에서 설명한 ISO 45001의 ‘긴급상황 대비·대응’ 조항을 참고하여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긴급상황 대비·대응에 관하여 중대재해처벌법과 ISO 45001 간에는 상당한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ISO 45001은 그것과 상당히 다른 개념인 ‘긴급상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은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 중대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호조치, 추가 피해방지조치 등과 같이 ‘대응적’ 성격의 조치만을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ISO 45001의 긴급상황 대비·대응 규정과 그 범위와 중점이 많이 다르다.

다시 말해, ISO 45001 8.2에선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대비’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8호 본문에선 ‘대비’를 정할 것을 예정하고 있지만 정작 각 호에선 ‘대응’에 관한 매뉴얼을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본문과 각 호가 조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등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제51조), 안전보건관리규정에 중대재해 및 중대산업사고 발생, 급박한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중지, 긴급조치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시행규칙 별표 3). 즉,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대응 매뉴얼에 관한 사항이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중복적으로) 규정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ISO 45001을 참고했다고 하지만 그 내용과 성격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이해할 때에는 이 점에 유념하여 해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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