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5월 태국에서 미국의 유명한 만화 <심슨가족>의 ‘바트’ 인형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는 일당보다 비싼 인형을 노동자들이 훔쳐 갈까봐 사측이 공장 문을 밖에서 잠갔기 때문이다. 인형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노동자의 생명의 가치보다 컸던 것이다. 이 사고는 전 세계에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노동자 안전보건 확보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1996년 4월 28일 국제연합(UN)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에 참석했던 각국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촛불을 밝혔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통계청(KOSIS)에 따르면 1993년 한국과 태국의 ‘근로자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수’는 각각 29.0건, 29.2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치명적 산업재해는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사망이 발생한 산업사고의 결과’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도 수치가 한 자릿수로 떨어졌을 뿐, 한국(4.6건)과 태국(5.5건)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 안전이 얼마나 등한시 되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2019년 기준 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7,250달러다. 이는 199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 9,01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2019년(3만3,830달러)과는 무려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경제적 수준이 유사한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의 중대재해가 3배 이상 많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로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높은 경제수준에 비해 안전관리 수준은 턱없이 낮은 것이 현주소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장기간 지속된 산업안전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및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마련하고, 안전문화 실천추진단을 통해 안전문화 정착‧확산에도 힘쓰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처럼 안전이 최우선 시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오랫동안 계속해서 전해주었으면 한다.

일순간 전 사회가 바뀔 순 없다. 하지만 안전하기 위한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사회는 변하고 만다. 마침 지난 4월 2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청의 대표이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아쉬운 면도 있지만 이번 실형 판결이 산업안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며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 했다. 높아진 경제 위상에 걸맞은 안전수준을 갖추고, 산업재해를 줄여나가야 한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상위권이라는 불명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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