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도서지역 전력 공급 업무를 위탁한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전이 구체적으로 업무를 지시한 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해 온 만큼,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광주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유상호 부장판사)는 한전 하청업체(주식회사 제이비씨) 노동자 145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 45명은 한전 소속 노동자로, 나머지 100명은 한전이 고용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청업체 노동자 145명은 1996년 한전과 도서전력설비 위탁운영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울릉도 등 66개 섬 지역에서 한전 소유 발전소 운영과 배전시설 유지·관리 등의 업무를 해왔다. 내륙 발전소로부터 송전·배전을 받기 어려운 섬 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관할 지자체 또는 주민 자치로 자가발전 시설을 운영했다.

한전은 정부 정책에 따라 섬 지역 자가발전 시설 인수를 확대했고, 1996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수의계약으로 하청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었다. 섬 지역에서 장기간 일할 노동자(현지 주민 포함)를 확보한 하청업체에 업무를 위탁한 것이다.

재판부는 파견법 취지, 계약과 실제 업무 내용 등을 두루 고려해 노동자들이 한전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한전이 직·간접적으로 업무 수행에 관한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면서 자신의 사업에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편입시켰다는 뜻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한전은 세분된 업무 처리 지침을 제공하고, 개별 노동자들에게 체화될 수 있게 반복적으로 교육·훈련했다. 또 공문·전화·사회관계망서비스로 발전원·배전원·검침원 등에게 직접적·구체적인 업무(전력 판매 요금 수금, 영업·설비 고장 복구 사항 등)를 지시했다.

노동자들은 발전 실적·고장 통계·근무 인원 등을 담은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 한전에 보고했고, 도서발전통합관리시스템에도 입력했다. 또 한전 창립기념일에 유급 휴일을 받았고, 한전과 공동작업 형태로 다양한 홍보·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하청업체는 근로자 선발, 작업·휴게시간, 인사·징계권, 교육·훈련 등에 대한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한전의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을 받았다. 하청업체는 독립적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고도 보기 어렵다. 원고들과 한전은 실질적으로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적자난에 허덕이는 한전의 경영과 자구 방안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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