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 사회는 정부,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조차도 위험성평가에 대한 학습이 많이 부족하다. 이는 국제규격에서 설명하고 있는 위험성평가에 대한 방법(기법)·절차를 잘못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험성평가 방법을 설명하는 국제규격으로는 IEC 31010(2019)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규격의 부록 표 A.3는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 프로세스, 즉 유해위험요인 파악(Hazard identification), 위험성 분석(Risk analysis) 및 위험성 결정(Risk evaluation)에 여러 방법(41가지. 망라적인 것은 아니다)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또는 적용될 수 있는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단 여기서 제시된 각 방법은 위험성평가 과정의 전체를 다루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보우 타이, 원인-결과 분석(CCA) 방법은 위험성평가 전 과정을 다루지만, 체크리스트 방법은 유해위험요인 파악만을 담고 있다. 또 위험성 분석(추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법인 강도/빈도 매트릭스 방법은 위험성 추정과 위험성 결정만을 포함하고 있으며, 위험과 운전 분석(HAZOP)은 유해위험요인 파악과 강도 추정만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제시된 방법 모두를 위험성평가 방법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위험성평가 과정 전체 또는 일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개정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제시하고 있는 빈도·강도법, 체크리스트, 위험성 수준 3단계(저·중·고) 판단법, 핵심요인 기술법 등을 비롯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50조 제1항 제2호 각목의 방법(소위 ‘공정 위험성평가 기법’) 등을 ‘위험성평가 방법’으로 규정한 것은 국제규격상의 위험성평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제50조 제1항 제2호)에서 ‘공정 위험성평가 기법’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방법들(HAZOP, Checklist, What-if, FTA, ETA, CCA 등)은 국제규격에서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위험성평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고, 위험성평가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유해위험요인 분석(Hazard analysis)’ 방법(공정 설비에 대해서는 ‘process hazard analysis(PHA)’ 또는 ‘process hazard evaluation’ 이라고 한다)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유해위험요인 분석은 위험성평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한편, 개정 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초 위험성평가’는 국제규격상으로는 ‘수시 위험성평가’의 일종이다. 국제규격에서 최초 위험성평가라는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초 위험성평가라고 하여 수시 위험성평가와 실시 방법에 있어 특별히 다를 만한 사유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고시(제15조 제1항)에서 최초 위험성평가에 대해 사업, 작업 또는 공사(실착공) 개시 전이 아닌 개시 후 1개월 이내에 또는 지체 없이(1월 미만의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작업 또는 공사의 경우)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라고 규정한 것은 위험성평가의 본질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위험성평가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

작업 또는 공사에 어떠한 유해위험요인이 있는지, 그 유해위험요인은 얼마나 위험한지를 판단하여 위험성이 허용 가능하지 않은 경우나(위험성이 허용 가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위험성 저감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사업, 작업 또는 공사 전에 위험성을 저감하도록 하는 것이 위험성평가의 목적이다. 사업, 작업 또는 공사 후에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게 되면, 위험성을 저감하고 싶어도(이미 기본 세팅이 되어 있어) 저감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게 되고, 결과적으로 위험성평가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위험성평가에 관한 국제규격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위험성평가의 방향성과 실시기준을 제시하는 나침반에 해당한다. 이를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위험성평가에 불필요한 혼란과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 부분은 조속히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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