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재활원 김종배 재활보조기술연구과장

필자의 주변에는 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면서 주변 사람들, 나아가서는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분들 중 하나인 S군과 그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한다.

S군의 어머니는 전신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S군을 어릴 때부터 학교에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켰다. 헌데 이 과정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매우 눈물겨웠다. 매일 아들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다시 그 아들이 탄 휠체어를 들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7개의 계단을 넘어 다녔다. 그리고 또 자동차에 와서는 아들을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자동차 시트에 옮겨 눕혔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학교에 도착에선 이를 역으로 반복했으며, 학교가 파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이를 재반복했다. 이런 생활을 그녀는 20년 동안 반복했다. 실로 자식을 향한 엄청난 희생이자 모정이라고 할 수 있다. S군 또한 이같은 어머니의 정성을 알기에 공부에 매진을 했으며, 그 결과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국내 굴지의 모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이 감동의 모자가 최근 필자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해주었다. 그동안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갈 때면 아들을 들고 내려야 했던 그 아파트에서, 계단이 없어 휠체어를 쉽게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하며 S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편해져 행복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또 그녀는 옛 아파트에서는 계단 때문에 S군이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자유롭게 외출하는 것을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 없이도 혼자 동네 산책을 자주 나가곤 한다면서 벅찬 기쁨을 전했다.

동네 산책조차 마음대로 못했던 아들이 혼자 힘으로 여기저기 구경도 할 수 있게 됐으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좋았을까. 필자 또한 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느껴졌다.

비장애인들에게 계단은 어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계단은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S군에게 옛 아파트 입구의 7개의 계단은 만리장성보다도 높은 벽이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이 계단을 개선해보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헌데 이는 쉽지 않았다. 경사로를 설치하려면 아파트 전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했던 것. 또 동의를 받아 경사로를 만든다 해도 입지의 구조가 매우 가팔라 위험의 소지가 높았다.

이런 점 때문에 그녀는 결국 계단을 없애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은 대안은 이사뿐이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장애를 겪는 사람은 위 모자의 이야기처럼 본인의 육체적 문제보다 환경적인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필자는 늘 ‘장애인이란 그 몸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장애를 겪는 사람’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S군의 옛 아파트에 있던 7개의 계단은 단지 S군이 집에 들어가고 나가는 접근성만을 막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동료, 친구, 선배들의 방문도 가로막고 있었다. 필자 역시 S군의 선배이자 재활공학전문가로서 그의 집에 가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경을 구축해주고 집안에서의 활동을 편하게 하는 보조기술에 대해 자문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계단으로 인해 갈 수가 없었다.

즉 그 계단이 S군에게는 접근성(Accessibility)의 장벽인 동시에 우리 같은 장애인 방문객에게는 방문성(Visitability)의 장벽이 됐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Visitability운동’이 조용히 일고 있다. ‘Visitibility운동’은 본인 집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없어도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집의 출입구 중 하나는 턱이나 계단이 없게 하고 1층 거실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촉진시키기 위해 미국 일부 지자체의 경우는 Visitibility 조례를 만들어 운동에 참여하는 주민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혜택도 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9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 중에는 장애인의 ‘접근성(Accessibility)’과 ‘방문성(Visitability)이 보장된 것이 많지만, 그 외 단독주택이나 상가 대부분은 휠체어 접근성과 방문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지어졌다. 문제가 이것뿐이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학로, 신촌, 홍대앞 등 먹을거리 볼거리가 많은 지역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아니 하다못해 수도인 서울부터라도 장애인의 접근성과 방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했으면 한다. 미국의 경우처럼 더욱 많은 이들이 이들 장벽을 허무는데 동참할 수 있도록 세금 감면이나 건축비 지원 등의 정책을 추진해야만 한다.

정부는 최근 사회의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사회통합의 첫걸음은 장애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불편함을 덜 겪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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