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광나루안전체험관장

우리는 내면에 뿌리를 두고 살면서도 뿌리가 없는 부유물처럼 떠돌이로 살고 있지 않은가.

10년 전, 강동소방서 팀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그날 당직관으로 근무 중 자정을 지나 두시쯤 되었을까. 성내동의 한 단독주택에서 불이 나 지휘차를 타고 신속히 출동했다. 이미 3층 주택 옥탑 방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시너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불을 지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주변사람들이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했다. 구조대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잠시 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그을린 여성을 업고 나왔다. 병원에 이송하기 위해 들것에 눕혔는데, 갑자기 일어서더니 연기 속으로 다시 걸어가서 불 속에 엎어지는 것 아닌가. 순간 그녀의 몸이 움찔하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그토록 사무쳐 뜨거운 불속에서 몸부림치는가.

우리는 환자를 급히 안고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가 IMF 위기를 겪을 무렵이였으니, 생활고에 의한 가정불화가 원인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했다.

우리는 1950~60년대 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 마음속에는 여유가 없다. 순간적인 생각으로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우리나라는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신문을 보니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가 하루 평균 42명이다. OECD 회원국 평균 11명보다 3배 가까운 수치라고 한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그리스의 10배 이상이다.

자살이라는 것은 평소 마음가짐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얘기한다. 한 개인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반대로 부정적인 낙인을 찍으면 그 낙인에 부합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낙인 효과’가 있는데,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 속에서 만들어진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 부정적인 사람을 다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분명 답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9명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 증상이 생기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정신과에 가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10명중 3명꼴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우울증을 앓아도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우리나라 자살 증가의 중요한 원인이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공공기관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검정을 위한 사전질문서에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나’라는 항목이 포함됐었는데, 이것이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도 단순히 정신과 진료를 받았느냐의 여부자체가 문제가 될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같은 사회적 편견 탓에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다. 행여 정신과 진료기록으로 진학·군 입대·취업·결혼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비교적 가벼운 문제들은 적극적인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중증의 질환은 특성상 조기진단과 초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주저하면 결국 더 큰 고통을 겪게 되고, 이는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연결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요즘은 뇌(腦)에 대한 연구가 워낙 발전하여 대부분의 정신 질환에는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감기나 배탈이 나면 약을 먹듯이 간단한 약물로도 정신질환 증세를 치료할 수 있는 시대이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무슨 어마어마한 몹쓸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특권층의 반칙과 승자독식 구조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불신과 증오, 갈등이 아니라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복지시설과 인프라를 더욱 확대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희망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고난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삶은 희망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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