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부터 50인(억)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간 경제단체, 정부 등이 중소‧영세사업장의 어려운 현장 여건을 들어 추가 유예의 필요성을 거세게 주장했지만, 여야간 입장 차이로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에 유예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하면서, 중처법은 이제 또렷한 현실이 됐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약 99%는 중소기업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법 적용은 곧 중처법의 전면 시행을 의미한다. 상시근로자 5명 이상인 모든 업종과 직종이 적용 대상이 된다는 소식에 현장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범법자 양산’, ‘폐업’, ‘줄도산’ 등을 비롯해 ‘빵집‧음식점 사장도 처벌될 수 있다’는 식의 헤드라인은 중소‧영세 사업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주 5일 근무제도가 단적인 예다. 제도가 처음 도입되어 단계적으로 시행될 당시 사회적 반향은 상당했다. ‘삶의 질’ 쫓다 ‘삶터 잃는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주 5일 근무 제도가 연착륙하면서 소비는 늘었고, 업무 집중도가 높아짐에 따라 효율성이 향상돼 기업의 생산성은 오히려 증대됐다. 위기론은 지나친 기우(杞憂)였다.

이 사례는 산업현장 전반의 체질 개선을 촉구하는 거대한 변화를 두고 우리 모두가 부정적인 시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일각에선 중처법과 주5일 근무제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내로라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최근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글로벌 경영환경은 우리 산업현장 체질 개선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힘을 싣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022년 6월 노동기본권 개정을 통해 안전보건을 다섯 번째 원칙으로 포함시켰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조성은 국제 질서가 요구하는 기본 원칙이 됐다.

또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시대에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손꼽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트렌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 정부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오는 2026년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기업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도입될 전망이다. 안전, 보건, 환경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직결된다. 따라서 앞으로 체계적 안전보건관리 역량은 원청, 파트너사, 고객,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이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 유무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우리 일터에서 사고나 질병으로 2,2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갔다 하루 평균 6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산재로 인한 직접손실액(산재보상금)은 6조, 직‧간접 손실을 포함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33조에 달한다고 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경제‧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이다. ‘사후약방문’에 쓰였던 이러한 천문학적 돈이 앞으로  ‘사전예방’에 쓰인다면 어떨까.  변화된 중소사업장에 청년들이 문을 두드리고, 기업은 인재 확보를 통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중처법의 시행 유무를 떠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어차피 어엿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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