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명수 대표, (주)아이엔엑스 / 디자인컨설턴트
염명수 대표, (주)아이엔엑스 / 디자인컨설턴트

최근 산업현장의 화두는 ‘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으로 중소사업장(5인 이상 50인 미만)도 법의 테두리안에 들어오게 되면서 안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면서 관련 일을 하고 계시는 전문가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디자인의 효과’를 주제로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산업안전디자인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라며 매우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10여년 간 변치 않는 재해 원인
그동안 정리했던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중대재해’는 결과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산업재해 중 사망 등 피해 정도가 심한 재해를 의미한다. ‘제조업 안전보건나침판 2022(KOSHA)’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사망사고의 60%는 끼임, 떨어짐, 물체에 맞음 등이 차지하고 있다. 주요 원인은 방호장치나 안전난간 등의 미설치, 스위치 오조작, 불안정한 적재 및 운반 등이라고 한다. 지난 2015년에도 유사한 통계를 접했는데 거의 십여 년간 변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과연 ‘디자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출처 : 중대재해사고백서(고용노동부, 2023), 48p.
출처 : 중대재해사고백서(고용노동부, 2023), 48p.

지난 2022년 말 발생한 제빵공장 식품혼합기 끼임사망사고는 나에게 있어 ‘디자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관련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고였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중대재해사고백서(고용노동부, 2023)’를 접하며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됐다. ‘별 보고 출퇴근하던 23살 청춘, 별이 되다’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사고상황과 식품혼합기에 대한 설명이었다. 작업자는 홀로 작업했고, 방호장치도 없었으며, 게다가 식품혼합기 비상정지장치는 오른편에 있었다.

영국, 응급실 폭력 예방 프로젝트(출처 : www.designcouncil.org.uk)
영국, 응급실 폭력 예방 프로젝트(출처 : www.designcouncil.org.uk)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람’
최근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인간, 즉 사람이다. 사람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 사람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사람 중심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의 초기부터 디자인은 인간의 욕구로부터,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분야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초기 조악한 상품에 대한 반항으로 미학적 고민이 시작되었고, 제2, 제3의 산업혁명 과정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능과 편의성을 고민을 해왔을 뿐 아니라 장애나 노약자를 위한 배려를 디자인원칙에 담아내기도 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인간이’ 디자인하는 전환적 사고방식을 창출하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출처 : www.ideo.org)
아프리카 가나,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출처 : www.ideo.org)

디자인은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체계화하고 방법론을 구체화함으로써 ‘진짜 문제는 사람 중심의 접근을 통해서만이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단순한 이론이나 가설이 아니라 실효성이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실증하고 있다. 도시의 문제도 기업의 문제도 이와 같은 방법론으로 해결하거나 개선한 사례는 상당하다. 산업안전 분야는 다를까? 진짜 산업안전 문제는 작업자 중심으로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없을까?

◇산업안전디자인은 작업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제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세계경제포럼, 2017)’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시대에 권한은 차치하고 안전조차 해결되지 않는다면 왜일까? 스마트 기기가 폭발하는 것은 뉴스가 되고 자동차는 결함이 있으면 리콜을 하는데, 어째서 산업기기는 조악하고 불편하여 사고나 작업자의 질병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오른손으로 작업을 하는데 정지버튼이 왼쪽이나 위쪽에 있었다면? 왼손을 사용하는 작업자는? 법적인 책임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예방이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실제로 작업자의 안전보건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산업안전디자인을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작업자 중심의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작업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작업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 즉 휴먼에러를 예방하기 위해 작업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예방이 최우선 과제이다. 기존의 산업현장은 물론 디지털 시대 스마트공장의 잠재적인 위험 역시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

산업현장과 시스템, 작업자가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별이 되지 않고 퇴근하는’ 한 사람의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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