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 윤성원 실장 인터뷰

정부는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지속 발굴‧제거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기존의 처벌과 규제 중심에서 노사가 스스로 위험요인을 개선하며 자율안전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안전디자인’은 근로자를 중심으로 현장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위험성평가와 뜻을 같이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 윤성원 실장은 “안전 표지, 도구, 공간 등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 발굴, 해결방안 조사, 현장 적용까지, 안전한 작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모든 사항을 포함한다”고 안전디자인을 정의했다. 윤성원 실장과 만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윤성원 실장.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 윤성원 실장.

Q. 안전디자인이란?

안전디자인은 안전성, 사용편의성, 기능성, 심미성, 사용자 특성 등을 고려해 산업현장 전반에 걸친 시각물·시설·환경, 서비스, 시스템 등을 설계하는 체계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작업에 사용되는 도구나 작업 환경 등을 디자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창의적이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안전디자인은 크게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환경디자인, 서비스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각디자인은 슬로건, 사인물 등 각종 의사소통을 위한 시각적 지시물에 관한 디자인, 제품디자인은 안전문, 받침대 등 도구에 관한 디자인, 환경디자인은 작업 동선, 휴게실 등 공간에 관한 디자인을 말합니다.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서비스디자인은 작업절차, 위험 대응 절차, 캠페인 등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Q. 안전디자인 구축 프로세스란?

프로세스는 크게 ▲진단하기 ▲발견하기 ▲정의하기 ▲개발하기 ▲전달하기 등 5개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기업에서 자가진단을 통해 안전관리 현황이나 문제점 등을 스스로 확인하면, 디자인 컨설턴트가 현장 관찰, 기업 이해관계자·근로자 심층 인터뷰와 관찰 방법 등을 통해 근로자에게 노출된 현장 내 위험요인을 파악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발굴된 핵심이슈에 대해 근로자의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위험 요소를 정의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특정 상황 속에서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 실제 근로자의 자료를 바탕으로 창출된 ‘퍼소나(persona)’와, 퍼소나의 경험을 시각화하는 ‘고객 여정 맵’이 구축됩니다.

이후 정의된 안전디자인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해결방안을 구상·기획·설계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디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합니다.
 

Q. ‘고객 여정 맵’은 무엇입니까?

머그컵이라는 제품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컵이 사용되는 시점에 맞춰 사용자가 컵을 잘 잡을 수 있을지, 잡을 때 크기나 무게가 적절한지를 고려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서비스디자인 측면에서 ‘고객 여정 맵’은 사용자의 어떤 의도나 욕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끝날 때까지의 ‘여정’을 생각합니다. 머그컵으로 치자면 컵이 만들어져 판매된 뒤 사용되고 낡아서 버려질 때까지 전체적인 사용주기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기차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표를 구매하고 역사로 이동하여 기차를 타고 하차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때 고객에게 기차여행이 좋은 경험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고객이 열차의 좌석에 앉는 순간뿐만 아니라, 고객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고객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시점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는지 알아내어 그 부분을 개선합니다.

이렇게 경험 단계별로 생성되는 고객의 심리적 작용을 시각화하는 것을 ‘고객 여정 맵’이라고 합니다. 물론 똑같은 서비스도 고객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고객을 대표하는 ‘퍼소나(persona)’를 정의한 뒤 퍼소나의 경험에 대해 그립니다.

이를 산업현장에 적용해보면 특정 근로자가 출근부터 퇴근까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작업을 수행하면서 어떤 위험요소를 겪는지, 그때 근로자의 감정은 무엇인지를 확인합니다. 근로자가 느끼는 감정은 ‘감정선’으로 표현됩니다. 근로자가 위험을 느끼면 감정선은 아래로 내려가도록 그리면서, 감정선이 떨어지는 지점 즉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확인합니다. 이 지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하고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습니다.

 

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2023), '안전디자인 사인시스템 가이드라인',  p. 93.
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2023), '안전디자인 사인시스템 가이드라인',  p. 93.


Q. 진흥원에서 실시한 ‘안전 서비스디자인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면?

‘안전 서비스디자인 사업’은 국가산단 내 중소·중견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디자인을 활용한 안전디자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컨설팅 및 실증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력해 2021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산단은 기업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계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왔습니다. 후순위로 밀린 안전보건은 자연스레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노후화라는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중대사고가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3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산단 내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중대사고 175건 중 97%(170건)가 20년 이상 노후 산단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 서비스디자인 사업은 산단에서 발생하는 중대사고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찾아 제거하고 근로자의 부주의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Q. 산단에 구축된 안전디자인 중 우수사례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난 2022년 컨설팅을 위해 광케이블 제조업 사업장을 조사하던 중, 근로자들이 칼날을 사용하고 아무 곳에나 올려두는 경우가 많아 베임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자석 칼날 수거함’을 제작해 사업장 곳곳에 비치했습니다. 자석을 활용하여 편의성을 높인 동시에 칼날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한 것입니다.

또 이 사업장에서는 경직된 조직문화도 안전 저해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기성세대와 MZ세대 직원들 간의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안전교육의 효과가 낮았고, 젊은 직원들의 퇴사율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회의실을 근로자들이 편히 소통할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 변경했습니다. 원형 테이블을 설치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를 적용해 근로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해당 참여기업은 근로자와 안전관리자의 의견을 반영한 디자인이 도출됐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는 피드백을 남겼습니다.
 

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2022), '2022 서비스디자인혁신사업 사례집', p. 33~34.
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2022), '2022 서비스디자인혁신사업 사례집', p. 33~34.


Q. 우리나라 산업현장 내 안전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현장에 가보면 안전에 왜 디자인이 필요한지 의아해하는 분위기입니다. 단순히 환경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제시한 ‘욕구단계설’에 따르면, 안전은 생리적 욕구와 함께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더 높은 측면의 욕구(인정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안전이 가장 먼저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행동을 동반한 변화를 유도해내는 실천적 설계 방법이 필요한데, 안전디자인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문제해결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중요한 접근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는 안전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Q. 안전디자인이 잘 구축된 해외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리적 특성에 맞춰 재난 대피구역을 시각화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진 시 천장 구조물이 무너지는 상황을 대비해 현장에서 낙하물 충돌 우려가 가장 적은 장소를 1차 피난 장소로 지정하고, 녹색 테두리로 표시한 것입니다. 테두리는 형광 테이프로 표시돼 있어 어두운 환경에서도 근로자들이 대피구역을 한눈에 인식할 수 있게 구축됐습니다.

또 미국의 글로벌 기업 아마존은 ‘워킹 웰(Working Well)’이라는 근로자의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작업 전 함께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작업 시 유의사항을 배우는 안전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영양 전문가를 통해 구성한 간식바 ‘잇웰(Eat Well)’ 등을 운영 중입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아마존은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근로자의 근골격계 질환 관련 부상을 32%가량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윤성원 실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윤성원 실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Q. 안전디자인과 관련해 앞으로의 과제와 목표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산업재해에 취약한 고령 및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안전디자인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 및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국내 사업장에서는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령 근로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로자의 신체적 변화, 현장의 노후화 등을 고려한 안전디자인을 사업장에 적용한다면 고령 근로자의 안전사고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최근 인력난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하면서 현장에서 안전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안전 서비스디자인 사업을 진행했던 한 기업은 전체 근로자가 외국인이었지만, 현장에 부착된 각종 안전 표식이나 안내문은 모두 한국어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공정에 맞지 않는 안전 표식이 부착된 것도 모른 채 작업하는 현장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산업현장에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을 위한 안전디자인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은 형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변화를 위한 방법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디자인이 더욱 많이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디자인진흥원은 1970년 '한국디자인포장센터'로 수출 기업의 포장디자인 지원에서부터 시작해 제품, 시각디자인 등으로 범위를 넓히며 디자인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려왔다. 최근에는 서비스디자인 영역까지 확장, 디자인을 사람들의 행동 변화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며 산업의 질적 성장과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 포털사이트 '디자인DB'를 운영 중이다. 안전디자인에 관한 정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공개 가능한 안전디자인 관련 자료가 있다면 게재할 수 있다.(이메일 문의, design@kidp.or.kr)

‣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의 실장으로 서비스디자인 관련 지원사업, 연구개발, 전문인력양성 등 업무를 총괄한다. 산단 내 중소·중견기업에 안전디자인 컨설팅·구축을 지원하는 ‘안전 서비스디자인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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