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사회적으로 ‘소통’이 부각됨에 따라 안전분야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의 의미는 도외시된 채 그 허울 따라잡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산업현장을 가보면 우수한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구성원들간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야 한다”, “소통이 잘 돼야 한다”, “대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등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통상 같은 의미로 쓰여 지고 있는데, 사실 명확히 따져보면 이들 표현은 명백히 다른 말이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이나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을 말한다. 또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끝으로 대화를 살펴보자. 대화의 영어식 표현은 ‘dialogue’다. 어원을 그리스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둘이서 하는 말’이라는 뜻과 ‘규칙이 두 개 있다’는 뜻을 모두 갖고 있다. 즉 대화에는 규칙이 두 개 있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규칙은 물론이고, 상대의 규칙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들 단어의 차이대로라면 커뮤니케이션은 일방통행식 정보교환도 가능하다. 소통은 서로의 정보교환만을 인정하되 그 과정에서 오해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는 나의 규칙과 상대의 규칙을 인정하는 가운데 말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업장의 안전관리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이들 단어를 선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안전관리를 보다 수월케 한다는 명목으로 이들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차이도 모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아울러 이는 필시 해당 관리자의 안전활동에도 오류를 불러올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있다. 『장자』의 ‘지락’을 보면 ‘노나라 임금과 바다새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노나라에 진귀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고,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몹시 사랑해서 마치 큰 나라에서 온 사신처럼 대접하였다. 술도 권하고, 맛있는 고기도 주고, 음악도 들려주는 등 아낌없이 정성을 쏟아 부은 것. 그러나 새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저 슬피 울다가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가 전해주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진정한 소통을 하라는 것이다. 노나라 임금은 새를 정말로 사랑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에 새가 바란 것이 하나라도 있었을 지는 의문이다.

임금은 새라는 상대를 자기의 고착된 자의식으로만 바라봤다. 즉 새를 새로 보기 위한 소통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보듯 대했다. 그러니 어찌 새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 사례는 대화(dialogue)의 기준에서도 어긋난다. 노나라 임금에게는 규칙이 한 개 밖에 없었다. 자기의 규칙만 있고, 바다 새의 규칙은 없었다. 그러므로 노나라 임금은 바다 새와의 소통에 실패했고 결국 자기가 너무나도 사랑한 바다 새를 죽이고 말았다.

안전관리활동도 마찬가지다. 안전관리자가 자신의 규칙만 내세워 무조건 큰 소리로 외치고, 일방적인 지시로 일관한다면 노나라 임금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내가 지켜야할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를 명심하고 더욱 많은 안전관리자들이 자신의 현장을 진정한 소통이 되는 현장, 나와 상대의 규칙이 조화를 이룬 현장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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