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10년 기준으로 재해자수는 98,620명, 산업재해율은 0.69%를 기록했다.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넘는 등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중 이 정도의 산업재해현황을 보이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헌데도 안전보다는 경제성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이러한 주장의 토대에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먹고 살만해졌다고 한 눈을 파냐’는 의식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1953년 여름 3년여의 긴 전쟁이 끝났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말 그대로 폐허 뿐인 국토였다. 이 황무지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잘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운동 구호를 외치며 일에 매진, 지금의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전후 회복에만 2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던 세계의 경제전문가들은 ‘한강의 기적’이라 칭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IT, 반도체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명실상부 세계를 이끄는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에 유독 선진국이라는 칭호는 붙지 않고 있다.

왜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 자살, 교통사고,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서 우리나라는 낙후된 모습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는 선진국에 비해 7~10배에 이른다.

이 시점에 아직도 안전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이들에게 우리 선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열심히 살았던 이유를 묻고 싶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그저 끼니걱정 없는 부유한 환경만을 전해주기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일했습니까?”라고 말이다.

당연히 그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그간 우리가 보아온 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유추해 보건데, 그들은 아마도 전쟁의 참혹함이 없는 따뜻한 세상, 행복한 나라 즉 선진국 대한민국을 우리에게 선사해주고자 했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의 목표가 맹목적인 경제대국이어선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을 꿈꿔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모범적인 국가상을 제시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 고위층의 도덕적 책임)’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 등의 저임금 국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 경쟁 속에 기술개발 보다는 원가절감이 더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가절감이 우선되면 현장은 생산성 위주로 돌아간다. 인력을 줄이면서도 업무량은 늘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있는 사업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올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악순환이 결국 산업재해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우리 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기업에 있다. 대기업이 먼저 설계 및 개발, 제조공정, 정비공정 등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협력업체가 산업재해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의 산업구조상 대기업이 앞장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개선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의 안전확보를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서 감독만 하기 보다는 현장을 직접 찾아 대기업의 안전활동을 장려하고 이들의 영향이 중소기업에 미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하나가 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 나간다면 산업재해 감소는 물론이고 동반성장, 상생 등 이른바 지속적인 성장동력도 더불어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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