灑然無累胷中月(가림 없이 시원스런 달과 같은 흉금이셨고)
渾是團和座上春(온통 온화한 자리 위의 봄기운과 같으셨네)
樑折山頹何處仰(들보가 꺾이고 산이 무너지니 또 어디서 뵈올까)
悲風揮淚洛江濱(낙동강 가 슬픈 바람 속에서 눈물 훔치네)

이달우(李達宇, 1629~1691)〈만장〉《청천당집(聽天堂集)》

이 시는 진사(進士) 이달우가 스승인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1599∼1676)을 애도한 만시(輓詩)의 일부이다.

첫째 구는 송(宋)나라 때의 문인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흉금(마음 속 깊이 품은 생각)을 묘사하면서 “흉금이 시원스럽기가 마치 비가 온 뒤의 맑은 바람과 깨끗한 달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둘째 구는 송(宋)나라의 학자 주광정(朱光庭)이 대학자인 정호(程顥)를 찾아가 1달 정도 가르침을 받고 돌아온 뒤에 사람들에게 “춘풍 속에서 한 달간 앉아 있었다(在春風中坐了一月)”라고 그 감동을 전했던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구는 공자(孔子)가 자신이 죽는 꿈을 꾸고서 아침 일찍 일어나, “태산(泰山)이 무너지려나, 들보(梁木)가 꺾이려나, 철인(哲人)이 시들려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앞의 두 구는 모두 훌륭한 학자의 고매한 인품을 형용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고, 셋째 구는 현인이 죽었을 때의 충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스승을 기리는 마음과 상실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얼마 전에도 광주의 한학자인 송담(松潭) 이백순(李栢淳)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몇 번 찾아뵐 때마다, 선비다운 온화한 풍모와 깊은 학식에 감모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었는데, 이제는 뵐 수가 없게 되니 위의 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봄을 맞아 산천의 빈자리는 어김없이 채워지고 있지만, 그 채운 자리만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세상사의 또 다른 이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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