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방영된 새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극중 서유경(공효진 분)이 엎지른 얼음이 끊는 기름에 들어가 폭발이 발생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을 일러 ‘수증기 폭발’이라고 한다.

이 장면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보니 ‘끊는 기름에 얼음을 넣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부터 시작해서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그 중에는 경험이 있는지 ‘솔직히 화상입어야 되는데..’도 있었다.

명장면을 한 번 감상해보자. 부주방장은 기름파편을 잘도 피했다. 냄비로 머리까지 철저히 가렸으니 문제없었다. 역시 부주방장다운 경륜이 느껴진다.

서유경을 급히 요리대에서 끌어내려 품에 안고 있는 쉐프 최현욱(이선균 분)의 등은 쏟아지는 뜨거운 기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실제였다면 중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 장면들은 드라마로, 사실이 아닌 논픽션이다. 하지만 실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어딘가에서는 발생했던 일이다.

‘수증기 폭발’로 인한 산업재해 사례

일상에서 보기가 드물 뿐이지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름과 같이 물보다 끊는 점이 높은 비수용성의 액체나 고체가 뜨거운 상태에서 물(얼음)을 만나면 물은 수증기로 변한다.

물과 만나는 그 액체나 고체가 온도가 높을수록 물은 더욱 빨리 수증기로 변할 것이다. 물이 수증기로 급격하게 변하면서 이에 따른 급격한 부피팽창이 곧 수증기 폭발이다. 그야말로 물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식당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서도 분명 있었다. 수증기 폭발로 인한 산업재해는 주로 금속용융물 취급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다음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수증기 폭발 사고를 모아본 것이다.

△ 2009년 7월 부산의 한 사업장, 알루미늄 용해로에 광재(鑛滓)를 섞는 과정에서 광재에 함유된 수분이 폭발하여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화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 10월 경기도 화성 알루미늄 가공공장에서 고온의 금속 용융물과 냉각수 접촉으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나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2006년 11월 경남 창원시 한 사업장 폐기물처리장에서 고열의 소각재가 배출구 하부의 냉각용 물받이 통으로 쏟아지면서 수증기폭발이 일어나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주방도 안전보건관리가 필요한 노동현장’

드라마에서 쉐프 최현욱은 서유경을 구했지만 사실 서유경을 위험에 빠뜨린 것도 최현욱이었다. 얼음을 들고 좁은 주방 통로를 이동하는 서유경의 진로를 본의가 아닌지는 몰라도 요리조리 방해했던 것이다.

비좁은 주방통로에서 물건을 들고 가는 사람에게 먼저 길을 양보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이다. 주방은 칼과 끊는 물, 기름과 같은 위험요인이 많은 가장 위험한 작업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쉐프 최현욱은 이탈리아에서 ‘맛있게 요리하는 법’만 배운 모양이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쉐프 최현욱의 만행은 불법적 해고와 여성차별에 그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지휘ㆍ감독하는 근로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이번엔 살신성인으로 부하직원 서유경을 구했지만 쉐프의 몸에 배인 듯한 안전불감증은 앞으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다행히 해고되지 않고 남아있는 직원들도 앞으로는 산업재해로 주방을 떠나야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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