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장 내 안전활동의 참여도를 높이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동기 부여 차원에서 ‘안전수준’을 각 현장 및 직원평가의 잣대로 활용하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장 상태 및 관리적 사항과 안전시스템의 운용 수준 등을 일정한 툴에 의거해 평가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승진 시 가·감점을 부여하거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형태.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는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장소장과 관리감독자, 협력사 관계자 등의 의식 개선과 안전참여도 제고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에 대한 시스템적인 평가가 갈수록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평가 대상자들이 본래 목적인 재해예방을 위해서 안전을 하기 보다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안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즉 안전이 도구화 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런 ‘안전의 도구화’ 경향은 비단 건설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건설을 둘러싼 제도 전반에서 이런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공공 건설공사 입찰시 입찰참가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사전 자격심사제도(P.Q)를 들 수 있다. PQ 심사 시에는 건설업자의 시공능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조건에 대한 검토가 이뤄진다.

이때 안전 관련부분인 환산재해율과 관련해서는 재해율이 낮을 경우 최대 2점까지 가점을 주고, 산재발생 보고의무 위반에 대하여 건당 0.2점씩 최대 2점까지 감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건설사로 하여금 재해예방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헌데 이 역시 점점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도 안전이 공공공사 입찰시 사전 자격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건설현장의 경우 공공 건설공사 입찰시 입찰참가자격에 대한 사전 자격 심사에서 환산 재해율 관련 가점을 받기 위해 발생한 재해를 보고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하고 있다. 또 중대재해 발생 시 보고는 즉시하되, 일반재해 10건으로 환산되는 재해자수를 사업주 무과실을 입증하여 재해자 1건으로 집계를 하는 등의 현장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역시 이런 실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올해 1월 26일부터는 사망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가중치를 일반재해자의 10배로 적용하고 사업주 무과실이 입증될 경우 1배의 가중치를 주던 당초의 제도를 5배의 가중치를 주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조치는 ‘안전 도구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뿐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한 안전관리 고유의 취지를 되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설사의 직원 평가나 입찰시 사전자격 심사제도의 기준으로 안전이 사용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과정 속에서도 인간존중을 중시하는 안전의 본래 의미가 부각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현 제도 또는 평가체계가 과도하게 안전을 도구로 삼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성찰을 통해 생명존중, 인명중시, 배려 등 안전이 담고 있는 가치가 근로자들의 마음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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