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소홀 등 안전불감증이 사고 배경

사고후속대책이 아닌 사고예방대책 절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 전반의 낮은 안전의식과 심각한 사고현황에 우려를 나타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경제 수치 외에 안전분야 등 다른 지표는 부끄러울 정도”라면서 “선진국에 맞는 재난재해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동안 우리나라의 안전수준은 대통령이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심각성을 드러내왔다.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개선되는 양상을 보인 것은 맞지만 선진국 수준의 안전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먼 얘기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상반기에 발생했던 수많은 재해와 사건사고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역시 다양한 사고로 인해 사회적으로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회자됐던 것이다. 우리 안전문화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고, 이것이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 부실한 안전관리, 미흡한 안전의식이 원인이 되어 국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줬던 상반기의 주요 재해를 모아봤다.

건설안전의 사각지대 ‘리모델링’ 현장

2012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지 채 열흘이 지나기도 전에 서울 도심의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 소식이 전해졌다.

1월 10일 오전 9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모델링 공사현장의 7층짜리 건물이 무너진 것. 이 사고로 근로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는 굴삭기를 이용하여 해체작업 진행 중, 바닥에 적치해놓은 철거 잔재물의 하중으로 인하여 슬래브의 일부구간이 지상6층부터 지상1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되면서 일어났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국토부는 즉각적인 후속 조치를 내놓았다. 유사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해체공사 안전관리 요령’을 제정한 것. 이에 따르면 안전관리계획 수립대상인 건설공사의 시공자 또는 건축주는 해체공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서에는 구조안전계획, 안전관리대책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또 현재 해체공사에 대한 감리자의 감독수행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문제점을 개선키 위해, 국토부는 해체공사 감독업무를 감리자에게 부여했다.

건설기술관리법상 안전관리계획의무대상(10층 이상의 건설공사, 10층 이상인 건축물의 리모델링 공사 또는 해체공사 등) 건설공사는 이 요령을 반드시 준수해야하며,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이 아닌 건설공사(4층 이상 또는 10미터 이상 건축물)의 경우 이 기준에 준용해 해체공사를 시행해야 한다.


사고 계기로 항타 및 항발기 안전대책 수립

항타 및 항발기는 건설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건설기계임에도 그동안 안전관리대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2월 13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약 15m의 항타기가 전도되면서 인근 8층 건물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건물의 2, 3층 유리창이 깨지고 벽 일부가 파손됐다. 다행히 피해 층에는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국토해양부는 항타 및 항발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항타·항발기 조종사 면허가 신설됐고, 항타 및 항발기가 설치되는 건설공사현장은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에 추가됐다.

도로에 난 거대한 구멍, 시민은 충격

2월에는 도로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일이 인천에서 발생해 많은 시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 사고는 2월 18일 오후 3시 15분경 인천시 서구 왕길동 검단사거리 인근 아파트 앞 6차선 도로의 지하철 터널 공사현장에서 발생했다. 터널공사 현장이 갑자기 붕괴돼 폭 12m, 길이 14m, 깊이 26m 규모의 거대한 흙구덩이가 생긴 것. 다행히 작업 중이던 근로자 20여명이 붕괴 징후를 포착, 서둘러 피신해 현장에서의 인명피해는 없었다.

허나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후속조치가 부실하게 이루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당시 현장관계자들은 사고가 나자 경찰서와 소방서에 즉시 신고했지만, 흙구덩이에 대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표지나 통제장치는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현장 직원들의 통제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 결과 음식배달원 정모씨가 직원들의 통제를 무시하고 오토바이를 몰고가다 흙구덩이에 빠져 매몰됐다. 정씨는 소방관들의 6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구조됐지만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인천시청과 관계당국은 관내 지하철 공사현장 전 구간에 대해 공사를 중지시킨 후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또 한 번의 유사사고로 빛이 바랬다.

3월 13일 오전 2시 50분경 인천 서구 마전동 도시철도2호선 202공구 공사현장에서 승용차 1대가 24m 아래 지하철 공사장으로 추락, 운전자와 동승자 등 2명이 중ㆍ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 사고는 현장 외곽에 차량 진출입을 막는 방호벽을 설치하지 않고, 현장 통제를 담당한 근로자가 자리를 비우는 등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현장소장, 현장 야간감독자, 원청업체 안전관리자, 감리자 등 5명이 입건됐다.


기본수칙 준수, 아직도 먼나라 얘기

3월에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3월 8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 양천구 목5동 한 아파트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외벽 도색작업 중이던 근로자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2층 높이에서 작업을 하던 중 바스켓이 갑자기 6층 높이로 급하강하면서 바스켓 밖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사고 근로자들 모두 사고 당시 안전띠와 안전대, 안전모 등 기본적인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다리차 운전기사 역시 근로자들이 바스켓에 오를 때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지만, 경찰 조사결과 사다리차 운전기사는 이러한 안전수칙을 키지 않은 채 근로자들을 작업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번 사고는 사다리차의 기계적 결함에다가 근로자 및 운전기사들의 안전불감증이 겹쳐져 만들어진 인재로 최종 판가름났다.

고리 원전의 부실 관리 은폐 시도, 불신 초래

이웃나라 일본에서 원전사고의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선 원자력 안전관리에 있어선 안 될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2월 9일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이 10분 이상 끊기고, 즉시 대체 가동돼야 할 비상 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전원 공급 중단 상태가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 될 뻔했다.

실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것. 문제는 이런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관계자들이 상부기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사고를 조용히 무마하려 했다가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한 달이 지난 3월 12일에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간 정부가 수차례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공인했던 터라 이번 사태가 불러온 파급력은 상당했다. 사실상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신뢰성이 일거에 무너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건 발생 후 원전의 가동을 중지한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점검에 이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점검까지 실시돼 안전성을 인정받았지만, 재가동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대는 여전히 거세기만 하다.

계속된 폭발사고에 놀란 ‘화성’

화성지역에선 올 상반기에만 두차례의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첫 번째 사고는 지난 4월 17일 오전 8시 27분경 발생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금곡리의 철제 옷걸이 제조 공장에서 가스폭발이 일어난 것. 이 사고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외국인 근로자 3명과 한국인 근로자 1명 등 총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두 번째 사고는 6월 18일 오전 11시 35분경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율암리에 위치한 모 접착제 생산공장에서 발생했다. 이 역시 가스 폭발사고였다. 이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특히 폭발 충격으로 공장 건물은 철골구조물만 남기고 완파됐고, 인근 건물 10여채와 차량 수십여대가 파손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공장 1층에서 톨루엔 용재를 이용해 생산 작업을 하는 도중 혼합탱크에서 인화성 가스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화성소방서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예견된 인재로 밝혀졌다. 사고 공장은 인화성이 높은 화학제품을 다루는 특수성 때문에 항상 화재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안전관리는 매우 부실했다.

일례로 2010년 8월 안전관리자가 있는데도 불구, 화재가능성이 높은 불법 위험물 용기를 사용하다가 화성소방서에 적발돼 벌금형을 부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해 5월에는 배출시설 미가동 등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화성시에 적발돼 과태료와 조업정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즉 평소 부실했던 안전관리가 결국 이번 사고의 단초가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한 해빙기 안전사고

얼었던 지반이 풀리면서 붕괴사고 등의 위험이 높은 해빙기는 장마철, 혹서기 등과 함께 취약시기로 분류된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안전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허나 우리 산업현장에선 그간 부실한 안전관리로 인한 해빙기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 20일 오후 1시40분경 경기 평택시 오성면 죽리의 한 공장 신축 공사현장에서 옹벽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길이 50m, 높이 2m의 전체 옹벽 가운데 20m가 붕괴된 이날 사고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명이 콘크리트에 깔려 숨지고 근로자 2명이 발목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또 같은 달 21일 오후 2시 46분경에는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신축공사현장에서도 옹벽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벽 아래 주차돼 있던 1톤 트럭이 무너진 흙더미에 깔려 반파됐으나 다행히 운전자가 자리를 비워 인명피해는 없었다.

학교안전의 빈틈 ‘수학여행’

올 상반기에는 학교안전에 있어 거대한 사각지대가 발견이 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학여행’이다. 중고교생들이 탑승한 수학여행 버스의 대형 교통사고가 무려 3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20일 제주에서 수학여행 버스가 추돌사고를 일으켜 학생 4명이 부상한데 이어, 5월 10일에도 제주에서 수학여행 버스와 화물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교사 1명이 숨졌다. 여기에 더해 5월 18일에는 강원도 양구군에서 수학여행 버스가 절벽에서 추락해 학생 41명이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양구 사고의 경우 사고 직전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안전띠의 착용을 지시했기 망정이지, 이런 기민한 대처가 없었다면 역사에 기록될 대참사가 나올 뻔했다.

이번 사고들은 ▲허술한 전세버스 계약체계 ▲너무 빡빡한 여행일정 ▲전세버스 운전자에 대한 관리체계가 미흡 등 학교의 수학여행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교육과학부는 수학여행에 대한 안전 규칙을 더욱 강화하라는 지침을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시달했고, 국토부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사망 및 중대교통사고를 발생시킨 총 204개의 운수회사를 대상으로 특별교통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운수회사에 대한 지도·감독과 안전관리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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