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태의 원인이 얼마 전 밝혀졌다. 탱크 위에서 불산가스 이동 작업을 하던 근로자의 작업실수가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누출사고는 공장 야외작업장 불산탱크 위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3명이 에어밸브 손잡이를 열다가 일어났다. 이들은 밸브 손잡이를 열기 전 불산가스를 통과시키는 호스의 밸브 연결상태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를 점검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근로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부터 20t 규모의 불산탱크 두 개 위에서 불산을 빼내는 작업을 했다. 탱크 개당 4~6시간이 걸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하루 일과 중에 작업을 끝내기란 사실상 힘들었다. 때문에 작업자들은 조급하게 작업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사고 당일에 공장장 장모(47)씨는 충북 음성의 공장에 출장을 갔고, 안전관리책임자인 윤모(41)씨는 위험한 작업이 진행 중임에도 현장을 관리하지 않고 사무실 안에 있었다. 즉 이번 사고는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보아왔던 부실한 관리·감독과 조급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수년에 걸쳐 고용노동부를 비롯하여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관련 기관·단체 등이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고착화된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와 상심도 크다.

이런 걱정은 이번 구미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볼수록 더욱 커져만 간다. 정부는 사고발생 11일만에 구미 불산가스 사고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늑장대응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정부가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과연 제대로된 재난대응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조차 의문을 갖게 된다. 유독가스 누출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경찰관과 소방관들은 적절한 보호장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또 국립환경과학원의 허술한 측정자료만 믿고 구미시는 자발적으로 대피한 인근 주민들에게 귀가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정부와 구미시는 사고 발생 후 10여일 동안 병원치료를 받은 환자만 3,000여명에 이르는 데도 근본 대책 마련보다 피해 규모 축소에만 급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제12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안전의식 향상을 위해 직접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이 대통령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국격에 맞게 안전을 국정의 일순위로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는 또 다시 대형재난 앞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국민들에게 정부가 말하는 ‘국격’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다. 정부와 안전보건관련 기관·단체, 산업현장의 모든 안전인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고착화된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욱 쉴 틈 없이 현장을 누벼야 한다.

산업현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는 방법은 결국 이 땅의 모든 안전보건인들의 노력 밖에 없다. 다시금 안전화의 끈을 단단히 조일 시기가 왔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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