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학의 향기

가는 것도 내가 가는 것이요
멈추는 것 또한 내가 멈추는 것이로구나

行亦吾行 而止亦吾止耶(행역오행 이지역오지야)

유신환(兪莘煥, 1801~1859)「연거십이명(燕居十二銘)」 중 「신발[履]」

유신환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 평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시무(時務)에 밝아 정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9세기 조선 후기의 실학적인 면을 계승해 군역제(軍役制)와 서얼금고(庶孼禁錮)의 폐단을 고발하고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위의 글은 유신환이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을 보고 느낀 바를 적은 것이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발’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는 철학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나는 신발이 있어야 다닐 수 있고 신발이 없으면 다닐 수 없으니 결국 신발에 좌우되는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내가 걸으면 신발도 걷고 내가 서면 신발도 따라서 선다. 그렇다면 신발 역시 나에게 좌우되는 존재이다.

또 신발은 나를 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멈춰 있게 하지는 못한다. 맨발로는 예의에 어긋나거나 불편해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끝내 내가 가고자 한다면 저 신발이 나를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신발이 있고 없음에 따라 나의 가고 멈춤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고 멈추는 주체는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나고 3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새해 시작과 함께 굳게 다짐했던 작심(作心)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핑계야 수십, 수백 가지겠지만 그 근원은 결국 자신의 ‘게으름’과 ‘나약함’에 있다. 즉 바로 가야할 때 제때 가지 않은 내 책임인 것이다.

새로운 봄이 찾아오는 이제부터라도 내가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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